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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9 :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선민(選民)주의 2017-02-03 01:13:05
작성자 : 김태황   조회 729, 추천 61


*  이 글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www.worldview.or.kr)의 월간지 <월드뷰> 2017년 2월호 pp.24-27 기획칼럼에 게재한 내용을 <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9>로 분류하여 옮겨 놓은 것이다.

9.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선민(選民)주의

트럼프가 바라보는 꿀과 젖이 흐르는 땅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가 2016년 ‘으뜸패’(trump)를 쟁취했다. ‘승리했다’(trumped). 미국 제45대 대통령은 선거유세 과정에서 전무후무할만한 저급한 언어폭력을 행사했고 윤리적 파문을 노출시켰다. 당선 직후에는 바로 그동안 과격했던 언행과 정책 노선을 일부 완화시키는 태도를 보였지만 재임 중에도 파급영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기대감과 우려감이 교차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새로운 고립주의가 실제로 국익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선거 과정에서 득표를 위한 대중선동의 전술적 구호에 불과한 것인지는 지켜볼 관심거리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선민(選民)주의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했다. 자기 함정에 빠졌다. 그들은 선민주의가 곧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 약속의 실현을 고대해 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덕분에 그것은 약속이 아니었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배타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 자칫 현대판 선민주의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트럼프는 선거유세에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탈퇴하고, 환태평양무역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고, 한미무역협정(KORUS)를 재협상 또는 파기하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여 상계관세를 약 45% 부과하고,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서는 현지국의 방위비 부담을 늘이도록 하거나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과 대립적인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통화함으로써 “하나의 중국”을 외교적 철칙으로 삼는 중국의 허점을 찌르면서 중국과 심리 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생각의 중심축은 배타적 국가 이기주의 즉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국(들)의 이해관계는 등한시할 수도 있다는 자기중심주의에 기반한다. 트럼프는 꿀과 젖이 흐르는 미국의 울타리를 높게 세워서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싶어 한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 후보의 애국심과 국가 경영철학에 동의하여 그를 지지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트럼프에게서 “위대한 미국”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선민주의의 함정
  “위대한 미국”을 외치면 듣는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기대감을 갖게 된다. 미국 국민들은 200년의 역사에서 세계 최강의 국가를 건설했으니 과연 ‘위대함’에 대한 성취감과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세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위대함’의 우월주의에 몰입될 수도 있다.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은연중에 다른 대상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대한‘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미국”을 이룩하면, 미국만이 절대적으로 특혜를 누리게 되거나 적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많은‘ 특혜를 누리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특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나 사후적으로 누리는 과정에서 자칫 자충수에 빠질 수가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투자에서 막연한 기대감은 확실한 실망감을 가져오듯이 막연한 특권의식은 확실한 배척으로 되돌려 받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선민주의는 범접할 수 없는 특권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스라엘 민족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사회문화적 특권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파라는 총체적 특권과 책임을 부여받고서도 직무유기에 함몰되었다. 특혜를 다른 민족에게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지 않고(또는 못하고) 특권의식 속에 가두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도 선민주의이고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의 불씨도 선민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이 선민주의에 배타성을 앞세우는 한, 세계에서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위대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분쟁의 골은 깊어진다. 선민주의가 목적이 되고 군림의 사상이 된다면 선민의 주체인 하나님의 창조의지와는 배치된다. 선민주의는 하나님의 창조의지를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통로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의 길라잡이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대함의 우월주의’에 몰입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오만한 국가주의?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어떤 경우에는 적어도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만을 위해서는 유익이 될 수 있는 사안도 이웃 나라와 먼 나라에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한다면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최소화하려는 미국의 정책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지라도 멕시코 국민들에게는 불신과 모멸과 배척의 적대감을 강요할 수도 있다. 환율 조작국의 지정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강제적으로 일본과 독일의 화폐가치를 절상시켰으며(미국 달러의 약화), 1995년에는 G7 경제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반대로 일본 엔화의 약세를 유도함으로써 달러의 가치를 높였다. 말하자면 정책 합의라는 명분아래 환율을 인위적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환율을 국제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여 전 세계에 유통시키면서 화폐 표시 금액과 제조비용의 차익으로 막대한 이익(세뇨리지, seigniorage)을 얻는다. 만일 1달러 동전을 주조하는 비용이 평균 30센트라면 미국 정부는 아무런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지 않고서도 고스란히 70센트의 순수익을 얻는다. 100달러 지폐를 제작하면서 만일 평균 40센트의 비용이 지출되었고 낡은 지폐의 회수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유통 기간이 10년이라면 이자율(1%로 가정)만큼의 수익에서 제조비용을 뺀 순수익은 9달러 60센트이다. 뿐만 아니라 회수비용이 발생하기까지 99달러 60센트를 활용(투자)하여 이자율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순수익의 규모는 단순 계산한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이러한 미국이 이제까지 마치 이타적으로 자국의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 왔다는 인식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경제체제와 총체적 세계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거나 위대한 미국에 대한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고도의 협상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미국 우선주의를 거래하려는
  트럼프는 탁월한 협상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기발한 감각으로 협상과 타협과 거래를 추진할 것이다. 최소한 상호이익의 호혜적인 협상 원칙을 지킨다면 세계경제에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TPP 대안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 감세 조치를 취하고 해외 진출 미국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이민자 수를 줄여서 내국인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하고 무역적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방위비 부담금을 절감하여 재정적자를 얼마나 줄일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세계경제는 이해타산에 보다 더 민감하게 돌아갈 것이다. 거래에는 언제나 상대방이 있고 시간과 공간이 있다. 그래서 거래는 공정해야 하고 장단기를 모두 고려해야 하고 영역과 범위를 정해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가 일방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우리가 미국 우선주의를 두려워하거나 배척할 필요도 없다. 다만 트럼프가 공언한 바대로 거래를 하려면 국제적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트럼프 그룹이 상업적으로 부동산 거래를 할 때에는 얼마든지 가격 흥정이 가능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미국 우선주의를 거래하려면 가격보다 신뢰와 설득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가 간 경제 및 통상 협상에서는 상호이익의 명분과 실리가 설득력을 가지는데 트럼프는 상대방과 이익을 공유할 생각이 없는 듯이 발설해 왔다.

선민을 넘어 시민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선민주의를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조국’을 외칠 때 배타주의가 근간이 된다면 선민주의와 마찬가지의 역사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조하고 지지하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증오한 히틀러가 1923년 11월 강대한 독일을 주창하면서 배타적인 민족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뮌헨 봉기에 실패하여 투옥된 이후 불과 10년 만에 수상과 총통이 되어 유럽을 지배하도록 독일 국민들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동조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주동세력은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지만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친 사람들은 충동질을 당한 일반 군중들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소수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에게 열려있다. 소수 지도자가 왜곡된 선민주의에 기대어 다수 국민들에게 충동질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수 국민들은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율적인 자기선언과 자리매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선민의식은 기득권을 누리려는 경향이 강하고 시민의식은 존재감과 권리를 만들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시민혁명 이후에도 민주주의적 시민의식이 바로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경제사(史)적 관점에서, 사유재산제가 대두되었고 자본과 임노동을 분리한 자본주의적 생산 수단과 방식이 정착되기에는 산업혁명의 거대한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2014년과 2015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의 성장률은 각각 2.3%와 2.1%였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1.1%와 1.7%(독일은 3.0%와 1.2%, 영국은 1.2%와 1.4%), 유로존 국가들은 0.9%와 1.4%, OECD 회원국들은 1.1%와 1.3%, 일본은 0.4%와 0.8%, 나아가 1인당 국민소득이 12,476달러(2015년 기준) 이상의 고소득 국가 전체의 경우에도 2개 연도 모두 1.3%였던 양상과 비교해 보면 경제성장의 측면에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현재 상태가 가장 양호한 미국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대중적 인기를 설득력을 가지게 된 것은 역설적이다.
  다시 꿈틀거리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립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넘어 보편적인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 어떻게 겨자씨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는 섣불리 “We are the world!”만을 외쳐서도 안 되겠지만 민족과 국가의 울타리로 햇볕과 바람의 흐름을 막아서도 안 된다. 울타리 바깥에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겠지만 울타리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집안의 동식물은 호흡을 멈추어야 한다. 세계경제의 탄력성과 흐름을 가로막거나 방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도 안 된다.
  세계경제가 과잉 공급 체제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온갖 마케팅 수단을 다 동원해도 상품과 서비스가 팔리는 속도보다 생산해내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일자리 부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과 계층에 따라 자원의 수요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다. 세계은행의 2016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2.7%와 남아시아 전체 인구의 18.8%가 하루 1.9달러(2011년 구매력 기준)이하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극빈층에 속해 있다. 세계 전체로는 약 12억명에 이른다. 가난한 자들의 자생적 삶의 몸부림과 더불어 부자들의 더불어 삶의 몸부림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은 트럼프 방식의 울타리를 치기보다는 바람이 매서울 때는 바깥사람들을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이고 햇볕이 따사로우면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 함께 땅을 일굴 수 있는 넘나드는 통로를 만들어가야 한다. 통로가 막히지 않으려면 이쪽으로 오는 사람도, 저쪽으로 가는 사람도 통로의 주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한국EU학회 회장과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실행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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