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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10: 빈곤층을 위한 경제정책 2018-09-12 14:53:21
작성자 : 김태황   조회 164, 추천 27


*  이 글은 기독교세계관에 의한 월간지 <월드뷰> 2018년 9월호 pp.38-41 기획칼럼 Worldview Issue에 게재한 내용을 <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10>으로 분류하여 옮겨 놓은 것이다.

10. 빈곤층을 위한 경제정책

가난한 사람들
  통계청에 의하면 2016년 우리나라 상대적 빈곤율은 처분 가능한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17.9%로 2015년에 비해 0.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바로 한 가운데에 위치하는 가구의 소득(중위소득) 수준의 50% 미만에 속하는 가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즉 우리나라 2016년 전체 가구의 중위소득이 연간 2,542만원이었는데 이의 50% 수준인 1,271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1년을 살아온 가구 수가 전체의 17.9%에 해당되었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가구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생활을 해 온 것이다. 전체 가구가 아니라 18-65세 근로 가능 인구만을 대상으로 하면 13.1%로 낮아지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 100가구 가운데 13가구는 상대적 빈곤을 겪은 것이다.
  지난 15년 간 우리나라 가계의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되었다. 소득 하위 10% 가구(1분위)의 평균 소득에 대한 상위 10% 가구(10분위)의 평균 소득의 비율 즉 소득 10분위 배율을 살펴보면, 2003년에는 9.1배, 2013년에는 10.1배, 2017년에는 10.6배 그리고 올해 1/4분기에는 무려 15.1배로 심화되었다(통계청 자료).
  세계은행 그룹 통계에 의하면 2013년 세계 전체 인구(71억 2,510만명)의 10.9%(7억 7,6635만명)가 하루 1.9달러(2011년 구매력평가 기준) 미만으로 생활했다. 1981년의 42.3%에 비하면 32년만에 빈곤문제가 크게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심각하다. 심지어는 2016년 미국 인구의 1.3%(420만명)가 하루 생활비 1.9달러(2011년 구매력평가 기준) 미만으로 생활할 정도로 빈곤층이 많았으며 2000년대 들어 악화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산업 발전과 경제 발전과 국제 무역과 협력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서 빈곤층이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대적 빈곤은 심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빈곤의 문제가 저소득 국가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잠재되어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빈곤층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
  우리나라는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경제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및 교육급여를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다. 즉 소득으로 인정되는 생계비가 중위소득 50% 이하인 빈곤층(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교육급여를, 43% 이하인 경우에는 주거급여를, 40% 이하인 경우에는 의료급여를, 30% 이하인 경우에는 생계급여까지 지급한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소득 인정 금액 하위 70%에게 노후 생활 안정 자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도 대상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저소득층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금융 부문에서는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 지원제도가 있다. 근로 빈곤층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키움통장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최저임금제도 빈곤층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한 “최저임금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저소득층 대상의 공공임대주택 제도, 근로장려세제, 자녀 양육 지원제도, 국가장학금 제도 등 다방면으로 빈곤층 또는 저소득층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공공 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모금회를 비롯하여 무수한 민간 법인이나 단체들도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빈곤퇴치 또는 완화를 위한 노력은 국제사회에서도 일찌감치 지속되어 왔다. 공적개발원조(ODA)라고 부르는 국제개발협력(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을 국제경제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대하게 된 시발점은 교회협의체의 제안이었다. 1958년 8월 덴마크 나이보그 스트랜드에서 개최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가 원조 공여국들이 적어도 국민소득의 1%는 원조 대상국(수원국)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면 세계적 빈곤퇴치의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선언서에 서명했다. 1960년 유엔(UN) 총회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여 가급적 1%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국제 원조를 지속적으로 증대시키자는 희망적인 의견을 표명하게 되었다. 이후 1968년 제2차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서 이러한 개발원조 목표에 채택하였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도 목표치로써 채택하였다. 공공 원조 규모와 여기에 민간 자본이 포함되는 성격에 대해 논의한 1969년 피어슨 위원회 보고서를 근거로 하여 마침내 1970년 10월 유엔이 원조 목표치로 0.7%를 결의하여 최빈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과 사회 복지 확대를 원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민소득 0.7%의 목표치를 달성한 국가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국제 개발원조가 미진한 상태인 셈이다.

빈곤층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통해서도 빈곤층 또는 취약 계층은 있기 마련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에 의해 불가항력적인 급변에 의한 빈곤층 전락도 있을 수 있고,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한 빈곤의 대물림도 있을 수 있고, 개인적 나태나 무기력 또는 기회상실에 의한 자기책임성 빈곤도 유발될 수 있다. 어린 아이, 질병 환자, 장애인, 노령층 등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경우에는 이로 인한 이차적 빈곤이 유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성경은 빈곤의 원인과 빈곤층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빈곤층에 대한 공동체적 지원과 배려를 강조한다. 약 3,500년전 대표적인 취약계층이자 빈곤층이었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신다고 하셨으며(신 10:18),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공동체적 돌봄의 책임을 부여하셨다(신 24:19-21).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민족을 통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은 사회적으로 자연발생적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빈곤의 책임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있든지 공동체에 귀속되든지 간에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으로 배려의 행동을 취할 것을 명령하셨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추수할 때에 빈곤층을 위해 곡식 단이나 감람나무 열매나 포도송이를 남겨두는 방식이 공동체적이지만 일률적이거나 집단주의적이지 않고 개인의 자율적인 배려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즉 성경은 공동체가 구성원의 빈곤 문제를 살펴서 도와줄 것을 명령하면서 구성원이 각자의 여건과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적절한 배려 수준을 정하고 이행하도록 이끌고 있다.
  성경은 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은 빈곤층도 공동체의 동일한 구성원이므로 공동체가 이들에게 자율적으로 지원하고 돌볼 기회를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구제와 말씀 사역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하고자 했던 것도 한편으로는 빈곤층에 대한 공동체의 돌봄이 사도들의 사역의 구심점이 되었음을 방증한다.

구조적 빈곤과 자발적 빈곤
  빈곤퇴치 또는 완화를 위한 개인적, 공동체적,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은 물론 절대적 빈곤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책적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 대상 사안의 발생원인 분석, 적확한 정책 수단 개발, 효과적인 정책 이행 방식 적용, 정책 효과 모니터링과 피드백 적용, 이러한 정책 이행 과정을 총괄적으로 소통시키는 관점과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점은 정책 방향을 좌우하므로 집단적 감성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빈곤은 구조적 빈곤과 자발적 빈곤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는 개인적 요인에서 유발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유층은 주로 금융 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면서 자본 소득을 얻고, 빈곤층은 주로 근로를 통한 임금 소득을 얻는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20년 동안 부동산 가격과 이자율의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았다면 빈익빈 부익부는 개인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경제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 셈이다. 자본 소득과 임금 소득이 모두 물가 상승률보다 높았다 하더라도 만일 다른 품목들에 비해 생활 필수 품목의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았다면 경제구조에 의해 상대적 빈곤은 심화될 수 있다.
  빈곤의 문제를 전적으로 사회경제적 요인으로만 전가시킬 수는 없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는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계층의 이동성과 경제적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부유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득 증가율보다 더 높은 소비 증가율로 과소비를 지속시키면서 보유한 자산을 소진시키게 된다면 자발적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달란트 비유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무위의 행동’도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하셨다(마 25:14-30).
  경제정책은 자발적 빈곤보다는 구조적 빈곤의 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조세 정책(예. 누진세, 저소득층의 소득세 공제 등)이나 재정 정책(예. 저소득층 대상 근로장려금 지급, 기초연금 지급 등), 금융 정책(예. 미소금융, 햇살론을 비롯한 서민금융 지원 등)은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해소시키고자 한다.

효율성과 공정성과 돌봄의 경제정책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두 가지 원칙은 효율성과 공정성이다. 경제정책은 한편으로는 경제활동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참여 주체들이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과로써 경제성과도 공정하게 배분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성경은 ‘공동체적 돌봄’의 원칙도 강조한다. 한 국가가 경제체제를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운영한다 하더라도 구조적 빈곤이나 자발적 빈곤은 얼마든지 유발될 수 있다. 특히 상대적 빈곤은 누구에게든지 항시적으로 잠재되어 있다.
  여기서 ‘돌봄’의 경제정책에는 중요한 선별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자발적 빈곤에 대한 엄정한 책임성을 부과하는 것이다. 즉 빈곤층이라 하여 무조건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태하고 근로의지가 결여되어서 빈곤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공동체에 의존하여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킨다면 먼저 그의 태도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돌봄의 원칙으로 포용하지 않는다.
  성경은 생산요소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투입되어야 함을 명시한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제비뽑기의 땅 분배와 가족 수에 따른 땅의 크기 결정 원칙이 그러하다. 공정한 제비뽑기를 통해 분배된 땅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생산의 효율성이 달라진다. 또한 성경은 당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토지가 빈익빈 부익부의 수단으로 사유화되지 않도록 희년제도를 제시했다. 희년제도는 토지 소유권과 경작권을 일정 기간 제한함으로써 생산요소(땅) 활용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도록 유도한다. 희년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빈부격차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돌봄’의 경제정책은 생산요소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에 대한 보완책이다. 따라서 자본, 노동, 기술, 정보 등 생산요소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투입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돌봄’의 경제정책은 엄정한 선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빈곤층을 위한 경제정책은 감성적 온정주의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빈곤의 문제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결코 종식되지 않고, 개인과 사회의 책임이 불분명하게 혼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빈곤의 결과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대응책은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 빈곤층을 위한 경제정책은 ‘돌봄’의 원칙으로 효율성과 공정성의 원칙을 보완하도록 되짚어봐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실행위원장직과 한국U학회 회장직을 수행한 후 현재 한국기독교경제학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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