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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4 : '돈'의 경제와 '도는' 경제 2014-11-26 17:36:13
작성자 : 김태황   조회 1,229, 추천 206


* 아래 글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에서 월간지로 발간하는 <월드뷰(Worldview)> 2014년 12월호(pp.28-33)에 게재한 글의 全文이며,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홈페이지 www.worldview.or.kr <월드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3.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 함께 만들어야 하는 일자리 (2014. 10)
4. ‘돈’의 경제와 ‘도는’ 경제
5.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2015. 1)


4. ‘돈’의 경제와 ‘도는’ 경제

  중국 자본(돈)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우려감이 커졌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증대되었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중국 자본 6조원 이상이 제주도에 투자되었는데, 특히 최근 3-4년 동안 분양된 5억원 이상 고급 콘도의 소유자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라고 한다. 올해 중국 관광객 약 600만명이 약 14조원(1인당 약 233만원)을 소비할 것으로 예측된다. 올 상반기 중 우리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 금액의 60% 이상이 중국 자본이었으며 미국 자본의 1.7배, 일본 자본의 3.2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 자본의 해외직접투자(FDI) 금액도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약 4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자본의 해외직접투자는 2013년 말 현재 총 1,070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천연자원 중심의 아프리카와 남미를 넘어서 남유럽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해외 자산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중국인 보험회사가 뉴욕 맨해튼의 세계 최고급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19억 5,000만달러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 2014년 10월 3일, 4일, 7일, 9일 기사 발췌 정리
중국 자본이 세계 경제의 자금줄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은 또한 세계 최대 외환보유 국가로서 현재 약 4조 달러를 쌓아두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총소득의 3배가 넘는 규모이다. 2010년부터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그 이전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계가 중국을 주시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군사력이나 인구만이 아니라 ‘돈’의 흐름이다. 온 세계가 중국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자본의 흐름을 이슈로 제기했지만 ‘돈’의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전체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돈이 최고다

  ‘돈이 최고야’라고 하면 물질 만능주의의 속물인가? 맘몬의 숭배자인가? 그러면 글로벌 경쟁시대에 자본 유치와 투자는 핵심 경쟁 요소라고 강조하면 좀 유식하게 들리는가? 표현의 차이일 뿐 사상과 신앙을 배제하면 같은 말이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돈이 최고야’라고 할 때 돈의 가치와 기능을 평가하는 것이지 돈의 위력이나 신성(神性)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돈, 즉 자본은 생산요소이지 생산 목적물이 아니다. 엄밀하게 보면 수익 또는 이윤이 돈으로 환산된 것이지 돈 자체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소득으로 연봉 5,000만원이라면 아무리 돈을 좋아하고 숭배(?)한다고 해도 그 소득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5,000만원의 가치는 개인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된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비교가 가능하고 경제적 의사결정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만일 의류 제조업자가 바지 몇 벌과 셔츠 몇 벌로 회사 이익을 계산하고 농부가 쌀 몇 상자로 연소득을 계산하여 서로 비교한다면 누가 더 수익성 높은 활동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부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판단하기 무척 어렵다. 돈이 끼어들어야 모든 과정과 판단이 수월해 진다.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역시 돈이 최고라고 단정지울 수밖에 없다. 목적으로서 가치가 아니라 수단으로서 가치가 최고이다.
  물론 태초부터 돈(자본)이 주인공이지는 않았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점점 더 노동력보다는 자본의 비중을 키워왔다. 가내 수공업이나 소규모 생산 체제에서는 일손이 제일 중요했다. 그러나 증기기관을 활용하면서 대규모 공장 생산과 대량 수송이 가능해짐에 따라 일손을 대체하는 기계설비의 설치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자본 투자가 경쟁력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노동력 즉 사람의 가치를 경시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동일한 비용으로 사람을 더 많이 고용하기보다는 기계설비 투자를 늘리는 것이 동일한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유리한 선택을 선호한 결과이다.
  ‘돈’의 역할이 커지면서 경제 논리가 ‘돈’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돈’의 기능을 활용하여 경제적 가치를 환산할 뿐이지 돈벌이 학문은 아니다. 경제학자들 가운데 재산 증식에 능한 사람이 있던가? 만일 있다면 본인이 아니라 배우자의 역량 덕분이거나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 덕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돌아야’ 돈이 생긴다

  우리의 관심사는 ‘돈’ 그 자체인가, ‘돈의 흐름’인가? 자본금, 순이익, 전세금, 연봉, 세금, 비빔밥값, 커피값 등 일정 금액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크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돈의 흐름’이다. 고인 물이 없듯이 정체된 돈은 ‘돈’의 기능을 상실했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 된다. 사도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장로는 다투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딤전 3:3)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였다(딤전 6:10). 왜 그랬을까? ‘돈’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돈’의 소유를 절대시하지 말라는 예언적 선언이었으리라. 소유에 집착한 사랑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적이지 않은가!
  정체된 돈을 생각해 보자. 덧없다. 마치 곡식을 몇 년이고 창고에 쌓아두고 굶고 있는 것과 같다. 여러 해가 지나면 곡식도 썩듯이 돈도 부패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현금 10억원을 고스란히 집안 금고에 몇 년간 보관하고 있다면 어리석거나 부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을 찾아내기가 어렵지만 찾아낸다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지나친 생각인가? 화폐는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이다. 지폐를 훼손하면 그 액면가만큼 자기 손해니까 정상인이라면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돈이니 내가 재산 손실을 감수하고 마음대로 불에 태우거나 찢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유재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형법 제207조는 화폐(동전, 지폐, 은행권 포괄)의 위조나 변조에 대해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 처벌을 명시하고 있지만 화폐 훼손에 대해서는 규정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은행법 제53조에는 주화(동전) 훼손을 금지하고 훼손 시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지폐는 훼손할 동기가 거의 없으므로 동전의 훼손에 대해서만 금지 조항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테면 10원짜리 동전의 원재료는 알루미늄과 황동(구리+아연)인데 제조원가가 액면가보다 높기 때문에 자칫 동전을 녹이거나 훼손하여 다른 상업적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공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키므로 합당한 제재(세금 부과)를 받아야 한다. 10억원을 집안 금고에 보관하는 것과 신용 있는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것에는 안전상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다른 사람이 이자를 지불하고 활용할 수 있다. 즉 돈이 돌고 돌 수가 있다. 맡기는 사람도 그 대가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현금을 집안에 두기를 고집하는 사람은 아마도 부정부패로 돈을 취득하였기에 숨기고 싶어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2013년에 발행한 화폐 금액은 33조 3,042억원이었다. 환수하여 폐기한 금액은 24조 2,772억원이었으므로 9조 270억원을 순증가로 발행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말 현재 총 발행 잔액은 63조 2,499억원으로 산출된다. 한국은행, 『2013년 연차보고서』, 65쪽
2013년 우리나라 국민총소득은 총 화폐 발행 잔액보다 22.4배나 더 많은 1,441조원이다. 외국돈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돈이라는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모두 헤아리면 63조 2,499억원인데 국민 전체가 지출할 수 있는 소득 총액은 1,441조원이라니, 어찌된 일인가? ‘돈’이 돌고 돈 덕분이다. 돈을 유통시키지 않고 자기 주머니에만 넣어두고 있는 사람은 검소하다고 평가받을 수는 있을지라도 무지한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직접 소비하지 않으면 금융기관을 통해 저축을 해서 자본 투자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증여하거나 사회적 단체에 기부를 해도 좋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순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연소득이 3,000만원(2013년 1인당 국민소득 규모)인 우리 국민 모두가 소득의 80%를 소비한다고 하면 화폐 승수효과{1/(1-0.80)}에 의해 5배인 1억 5,000만원의 국민소득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 ‘돈’이 적체되지 않고 유통되어야 더 ‘큰 돈’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돈’

  하나님은 우주만물에 움직임을 주셨다. 개체의 특성에 따라 각기 속도는 다를 수 있다. 생명체이든 무생물체이든, 자의든 타의든 모든 존재와 물체는 움직여야 한다. 풀은 바위틈에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바위에는 그 뿌리로 인해 피동적으로 틈이 벌어지고 비바람에 의해 자기 형상을 변화시킨다. 돈이 교환의 수단이든, 가치 척도와 가치 저장의 수단이든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오히려 창조원리에 적확하게 부합한다. 인간이 고안해 낸 것 가운데 가장 빠르고 가장 원활하게 움직이는 가시적인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거듭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돈’을 숭배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경제학이 돈맛(!)을 좇는 지식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실상은 돈맛을 객관화하고 상대화해서 돈의 위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궁리하는 학문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에 ‘돈’이 필요할까? 감히 ‘돈’의 속성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에 가당키나 할까? 필요하고 가당하다.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도 구한다면 그렇다고 단언한다. 이를테면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7가지 비유를 들었는데 5가지가 경제활동과 직결된다. 이 가운데 보화가 감춰진 밭과 좋은 진주의 구입 비유에서는 둘 다 화폐의 교환기능을 전제로 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경제활동은 습관적이고 단순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생존의 문제를 가장 적확하게 표출시키는 방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양상은 하나님 나라를 가장 실감나게 설명할 수 있는 현장 교재인 셈이다. 이러한 경제활동은 ‘돈’을 매개체로 하여 이뤄진다. 실제로 성경에는 달란트, 므나, 데나리온, 렙돈, 고드란트, 앗세리온 등의 화폐 단위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돈’은 하나님 나라를 오염시키거나 타락시키는 우상이나 사탄의 끄나풀이 아니다. ‘돈’은 그저 ‘돈’일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정상적으로 사고파는 상거래가 합법적이라면 정상적인 ‘돈’의 역할도 합법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하게 받아야 할 것이 비단 먹거리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딤전 4:4).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놀이’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 ‘돈’이 악의 원천이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돈’이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돈을 “탐내는 사람”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딤전 6:10). “돈을 사랑함”으로 인해 빚어지는 해악의 함정에서 벗어나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켜 보면 하나님 나라에는 돈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돈’과 ‘이 땅의 돈’

  ‘하나님 나라의 돈’과 ‘이 땅의 돈’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먼저 하나님 나라의 돈은 흘러가는 돈이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 19:21). 돈의 본래의 기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 땅의 돈은 더 이상 흘러가지 않고 쌓여 재산으로 드러나려는 돈이다. 또한 하나님의 돈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감하고 사람들과 공감하는 목적에 쓰이는 돈이다. 따라서 “소유를 팔아” 돈을 유통시키더라도 다른 ‘부자’에게 돈이 더욱 집중되도록 흘러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돈의 본질적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목적과 결과의 차이이다. 즉 돈이 하나님과 사람과 공감하는 목적으로 쓰이더라도 돌고 돌아서 결과적으로 부자에게 집중되는 경우와 애당초 돈이 부자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직접 흘러가는 목적성을 띠는 흐름은 다르다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현존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에서 같은 크기로 열린 풋 열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견실한 열매와 빈약한 열매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견실한 열매가 열리는 자리와 빈약한 열매가 열리는 자리가 항구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땅의 돈’은 증식의 목적에 쓰이는 돈이다. ‘이 땅의 돈’은 합법적이기만 하면 누가 어떻게 소유하든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돈을 많이 소유할수록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이나 배척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간혹 돈 욕심이 지나치다고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재산 증식의 목적은 달성하게 된다.
  단지 사람들끼리의 약속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돈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달라진다. 하나님 나라의 돈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그저 이 땅의 돈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돈은 무생물이다. 생명력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 가치를 부여함에 따라 돈이 위력을 나타내게 되었다. 돈의 가치가 중립적인 하나님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돈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위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돈이 주인이 되지 않도록 돈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공감하고 사람이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공간, 하늘과 땅, 공기와 물, 음식물과 옷, 주택과 사무실 등을 연결시키는 편리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돈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땅의 돈’을 숭배하거나 친해짐으로써 돈의 위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없앰으로써 돈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이 땅의 돈’은 ‘하나님 나라의 돈’으로 용도가 전환되어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돈을 노예로 부려야 한다.

돌고 도는 경제

  자본주의적 ‘돈’의 경제는 돌고 도는 경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활동 참여자들 간 공감대가 넓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모두(冒頭)에 언급한 중국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중국 자본이 대규모로 축적되어서 세계 도처로 이동한다는 사실보다 우선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돈이 돌고 돌아서 마침내 거대한 중국 자본이 축적되었다는 사실이다. 막대한 해외직접투자 자본이 중국으로 몰려 세계의 생산 기지를 형성했고 수출을 통해 얻은 이익이 재투자되었다. 일자리가 증가하여 소득이 생긴 근로자들의 소비활동도 활발해졌다. ‘돈’이 돌고 돌아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시하신 하나님의 희년제도를 소득 재분배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할 때, 49년마다 땅의 소유권이 환원되는 것은 경제활동과 그 결과가 일방적으로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는 측면을 상기시켜 준다. 애초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이 경작권을 팔아야 할 정도로 여건이 어려워지더라도 궁핍의 악순환으로 함몰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즉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제활동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어지도록 배려한 것이다.
  경제활동의 순환이 활성화되려면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다. 식료품 제조 기업들이 국내산 친환경 인증 마크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소비자들과 공감의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친환경 인증 마크를 확인하고 구매 의욕이 생긴 한 소비자가 실제로 구매하여 소비한 결과 만족한다면 그 식품의 재구매를 결정하고 그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것이고 기업은 소비자 만족도를 더욱 높이려는 투자와 생산과 판매를 촉진할 것이다. 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는 중요한 공감의 순환 고리가 탄탄해질 것이다. 반면에 올해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가 인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은행의 대출(여신) 금리가 비례적으로 인하되지 않는다면 금융 서비스에서 상호작용이 원활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금융 공급자와 수요자 간 공감이 훼손되는 것이다.
  돈이 내 주머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단축시키면 경제가 활성화된다. 돈에 대한 나의 소유권도 상대화된다. 돈(자본)의 위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가 돈으로 딴 맘을 품지 못하도록(!) 돌리고 돌려서 경제활동에 휩쓸리게 해야 한다. 돈이 필요한 경제이지만 경제의 주체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돈이 돌고 경제활동이 순환해야 하지만 사람까지 돌아서는(crazy) 안 된다. 사람은 돈과 경제를 돌려야 하는 자율적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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