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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하나님, 공감의 경제학 8 : 브렉시트, 출애굽, 민주주의 2016-08-01 16:13:31
작성자 : 김태황   조회 1,152, 추천 136


* 이 글은 <공감의 경제학> 연재글 여덟번째로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www.worldview.or.kr)의 월간지 <월드뷰> 2016년 8월호 pp.36-39에 게재한 내용을 옮겨 놓은 것이다.

8. 브렉시트(Brexit), 출애굽(Exodus), 민주주의

영국의 헷갈리는 선택
  시리아 국민들은 ‘탈출’을 감행했고, 영국 국민들은 ‘탈퇴’를 선택했다. 탈출과 탈퇴는 모두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6월 23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공교롭게도 시리아 국민들이 조국을 탈출한 여파가 직접적인 한 계기가 되었다. 시리아 난민들이 영국의 EU 탈퇴를 종용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은 난민 유입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EU밖으로 뛰쳐나오게 되었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헷갈리는 선택을 해왔다. 195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립하여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 공동시장을 통해 경제적 공동 이익을 추구했을 때 영국은 비웃으며 외면했다. 국가의 자율성이 약해지고 대륙 세력에 끌려가기 싫은 측면과 공동시장의 실효성이 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1958년 로마조약을 기반으로 ECSC가 유럽경제공동체(EEC)로 발전해 나아가자 영국은 이에 대항하고자 1960년 7개 국가들(현재는 4개국)로 구성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주도적으로 창설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머지않아 오판을 깨닫고 EEC에 가입하고자 애썼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으로부터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다. 1969년 드골 대통령이 물러난 후 1973년에서야 덴마크와 더불어 EFTA를 탈퇴하고 EEC에 가입하였다. 1975년에는 다시 EEC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여 압도적인 차이로 잔류를 선택하였지만, 영국은 회의주의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영국은 애초 유럽 경제공동체를 거부했다가, 저항 세력을 만들었다가, 후회하고 받아달라고 매달렸다가, 잘못 선택했나 싶어서 되짚어봤다가, 올 2월엔 협상의 지렛대를 활용하여 국익을 챙겼다가, 6월엔 마침내 회원국들 가운데 처음으로 공동체 탈퇴를 선택했다.
  시리아 난민문제는 영국만이 겪는 고심거리가 아니다. 독일의 경우는 인기 절정이었던 메르켈 수상의 지지도가 급감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었다. 난민 수용 또는 대처 방안이야말로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공동체 차원에서 무게의 중심을 분산시켜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자국 위주의 폐쇄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다.
  최근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다른 회원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은 2011년부터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회원국 평균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었다. 영국이 경제통합의 시너지 효과 없이도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 또는 상승시킬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이다. 이를테면 2014년 기준 EU 28개 회원국에 유입된 해외직접투자(FDI) 유입액은 7조 8천억 달러로 이 가운데 21.4%(1조 7천억 달러)가 영국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EU내 외국인직접투자의 최대 수혜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FDI 유입이 EU의 경제적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국과 EU 간 다시 경제적 국경이 생겨서 투자의 흐름이 원활해지지 못한다면 투자 매력도도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영국의 EU 회원국들과의 무역 비중이 2006년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냈는데, 2014년 기준으로 중동부 유럽 회원 국가들의 EU 내 무역 비중이 73.1%, 프랑스의 경우 64.6%, 독일의 경우 61.3%에 비해 영국은 50.8% 수준으로 그리스(48.4%) 다음으로 적은 수준이다. 그러면 영국이 탈퇴하면 EU 회원국들과의 무역이 증대될 것인가? 오히려 더욱 축소될 것이다. 또한 지난 10년 간 서비스수지는 흑자를 나타냈고 상품수지는 적자가 심화된 추세를 보였는데 EU를 탈퇴하면 서비스수지 흑자는 확대되고 상품수지 적자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오히려 반대 양상이 나타날 소지가 크다고 판단된다.
  영국이 EU 회원국으로서 누린 혜택보다 재정 부담이 더 컸다는 인식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다. EU 예산에 대한 국가별 기여금을 살펴보면, 2014년 기준으로 영국은 141억 유로를 제공하여 독일(290억 유로), 프랑스(210억 유로), 이탈리아(159억 유로)에 이어 네 번째였다. 기여금에서 수혜 금액을 공제한 순기여금 규모도 2014년 71억 유로로 독일과 프랑스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영국은 올 2월 EU 정상회의에서 몇 가지 실익을 챙겼다. 먼저 EU가 제정한 법률을 전면 거부하거나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레드카드 제도를 도입하여 영국의 자주권을 확보하기로 합의했다. 단일통화(유로)의 유로존 국가들과 비(非)유로존 회원국들 간 차별이 있다고 인식할 경우 유럽이사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유로존의 영국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영국으로 이주해 온 회원국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혜택(근로세제와 아동수당의 혜택)의 축소도 합의했다. 영국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소득이었다. EU 정상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영국이 탈퇴함으로써 유발되는 혼란을 예방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영국 국민들은 이민자에게서 일자리를 되찾고 영국의 이익을 챙기자는 정치적 구호에 동조했다.

나그네와 난민
  성경은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돌보라고 명령한다(출 23:9; 신 10:18-19; 24:19; 슥 7:10; 딤전 3:2).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외형적인 과부가 아니라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딤전 5:3)고 권고했다. 그러면 특히 2015년 하반기부터 유럽으로 유입이 급증한 시리아 난민들은 ‘참 나그네’인가? 과부라 하더라도 그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효를 행하고 부모에게 보답하도록 교육하라는 사도 바울의 지침(딤전 5:4)에 근거한다면 난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객관적 사실만으로 ‘참 나그네’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난민들은 시리아를 떠나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동원할 물질적 여건과 육체적 조건을 갖춘, 상대적으로 기반이 있었던 계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공동체가 ‘참 나그네’를 돌보기 위해서는 ‘참 나그네’를 분별해야 한다. 난민들을 줄 세워서 ‘참 나그네’를 선별해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조국을 떠나는 국민이 모두 ‘참 나그네’로써 보살핌의 대상이 되고 이로 인해 그 수가 급증한다면 당사국이나 국제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난민이 유발되고 확대되지 않도록 시리아 내전에 대해 국제사회가 보다 준엄하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둘째, 공동체가 ‘참 나그네’를 돌볼 수 있는 수용성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한 논리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돌보셨기 때문이다. EU는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난민들을 수용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급증한 난민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판단은 공감하지만 ‘돌봄’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탈퇴 의사는 ‘참 나그네’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출애굽(Exodus)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Exodus)한 것은 공동체 단위였다. 430년의 생활 터전을 떠나면서 본의 아니게 이집트에 치명타를 입히고 “수많은 잡족”(many other people)(출 12:38)과 함께  탈출했다. 그러나 탈출 그 자체가 구원은 아니었다. 탈출 세대의 대부분은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객사(客死)했다. 가나안 땅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출애굽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에 따른 난민들의 탈출은 어떤가? 먼저 난민들의 탈출은 개인적 선택이었다. 개인적 가치와 선택은 공동체적 가치와 선택과 다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다수의 가치와 선택이 반드시 공동체의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웅변하는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난민들의 개인적 탈출은 시리아 사태의 공동체적 해결책과 배치(背馳)될 수도 있다. 난민들이 생사를 넘나들어 유럽에 이르렀다고 해서 탈출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출애굽과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생활이 구원에 이르는 단련 기간이었다면 난민들의 유럽 적응 기간들도 혹독한 단련의 시기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EU 탈퇴 그 자체가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탈퇴가 가시화된다면 난민 유입의 수는 감소할지라도 합법적 유입이 불법적 유입으로 탈바꿈하면서 문제의 본질은 잔존할 것이다. 영국의 EU 예산 분담금은 사라질지라도 EU는 영국에 정책 협력을 위한 부담금을 현재의 순분담금(분담금-직접 수혜금) 수준 못지않게 요구할 것이다.

공동체의 딜레마
  EU가 사회․경제 공동체로서 지속가능하려면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커야 한다. 영국의 탈퇴 선언만으로 원심력이 더 커졌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딜레마에 봉착했다. 공동체의 심화(deepening)와 확장(widening)을 위해서는 글로벌 경기침체, 난민 유입과 테러 위협 등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해 공동체적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공동체적 대응의 성과가 자국의 이익을 증대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개별 회원국은 공동체적 대응력을 강화시키는 일에 불만을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올 2월 영국의 개별 협상 사례는 이러한 딜레마를 단적으로 방증해준다. 이제 각 회원국은 자국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마치 ‘공유지의 비극’처럼 책임은 공동으로 부담하고 권한은 자율적으로 누리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과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리더십을 더 크게 발휘해야 한다.
  EU 공동체는 영국이 국가 이익을 배타적으로 증대시키도록 끌려갈 수도 없고 더 이상 회원국이 아닐 영국을 통제할 수도 없다. 영국 신드롬이 확산되지 않도록 집안 단속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유인책이 없다.

국가 민주주의를 넘어
  브렉시트는 영국의 민주주의적 국민투표의 결과이다. EU 공동체로서는 민주주의적 결정이랄 수 없다. 리스본조약에 따르면 탈퇴 의사결정은 회원국의 권한이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영국의 탈퇴를 반대하는 입장을 반영할 방도가 없었다. 국가 민주주의는 지켜졌지만 국제적 민주주의는 발휘되지 못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일자리 부족, 빈부격차 심화,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 회피, 국제적 테러 위협, 글로벌 기후변화, 국제적 지역 갈등과 난민 문제 등 글로벌 이슈들은 개별 국가의 자율적인 대응력도 필요하지만 국제적 협력체제가 필수적이다. 국가 민주주의를 넘어 글로벌 공감이 필요하다. 시리아 국민들은 떠나고 싶지 않은 조국을 떠났고, 영국은 떠나지 말아야 할 공동체를 배반했고, EU는 떠나보낼 수 없는 동지에게 이제는 압력을 행사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광야는 구원의 땅이 아닌데 모두가 광야로 들어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이며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실행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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