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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시론> 한국 기독교의 이해집단화를 경계해야 한다.. 2007-09-02 01:22:05
작성자 : 김태황   조회 1,840, 추천 378


한국 기독교의 이해집단화를 경계해야 한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2000년 3월말 장신대 신학대학원 신앙사경회에서 외친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쟁쟁하다. 역사적으로 고등종교의 타락에는 네 가지 뚜렷한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성직자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종교기관의 수도 급증했으며, 신앙이 기복화되었고, 해당 종교가 이해집단화로 변모하였다는 것이다. 폐부를 찌른 점은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바로 이러한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8월 9일 한국 기독교 20여개 교단 총회장, 22개 교단 총무, 55개 선교단체장 등 100여명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구약 성경으로 신앙 고백을 같이 하는” 각 단체 대표 직분으로 해당 후보의 도덕성과 정직성 때문에 지지한다는 절대적 이유를 밝혔다. 또한 선진국 진입을 위한 경제 문제, 이념과 사상의 갈등 문제, 지역감정 문제, 민족의 통일 문제를 두루 해결할 적임자는 유일하게 특정 후보라는 주장을 아무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선언했다. 만일 다른 교단 지도자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진실된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1378년부터 40년간 지속된 ‘교회 대분열’ 과정에서 마침내 3명의 교황이 서로 ‘악마’라고 저주하며 공존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재현했을 것이다.
  무려 100여명에 이르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러한 성령 충만한(?) 집단행동은  며칠 간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 숙고해 보아도 우둔한 평신도에겐 낯설기만 하다. 첫째, 공(公)과 사(私)가 구별되지 않는다. 선언식 사회자가 선동적으로 신앙고백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과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전자는 개인적 믿음의 표현이지만, 후자는 전달자의 대리 선언이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믿음과 표현의 자유는 아무런 조건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만일 이번 선언식이 참여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자유롭게 표명하는 기회였다면, 이들은 교단과 선교 단체의 고위 직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의 뜻을 개인적 용도로 끌어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종은 세상에서는 자유로운 자이나 하나님의 뜻에는 메여있는 자가 아닌가?
  둘째, 오늘날 영적 지도자와 구약시대 선지자의 역할이 혼동된다. 영적인 지도자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자가 아닌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교단의 지도자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며 왕권을 부여한 사무엘 선지자인양 감정이입해서는 안 된다. 설령 개인적으로 정치적 확신이나 영감이 든다 하더라도 ‘지지 선언’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에 어떤 유익을 가져올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들이 주장한 내용은 주관적인 정치적 판단에 따라 ‘유자격자’를 보증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려는 것과는 무관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대통령’을 연호하기를 선호한 언행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개인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와 설익은 선지자적 영감이 혼합된 해프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종이 진정으로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세속적 공인을 자청해서는 안 된다. 총회장과 총무의 직분이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에 동원되는 일에 소속 교단 평신도들과 선교단체 회원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을까? 현대어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에는 영적인 지도력을 앞세워서 세속적인 권력에 다가가려는 무리의 성공담을 발견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이번 대선 정국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이 아니라 소망하는 ‘무엇을’ 호소해야 한다. ‘누구’에 대한 선택권은 오직 하나님의 고유권한이므로 우리가 결코 앞서 갈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이 시기에 베를 두르고 재를 뒤집어쓰면서 한국 기독교의 이해집단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국민일보에 기고하여 2007년 9월 6일 22면 <시론> "종교와 정치"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이다.
http://www.kukinews.com/special/article/opinion_view.asp?page=1&gCode=opi&arcid=0920652659&sec=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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