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단연 시급한 과제는 민생 챙기기입니다. 다른 두 가지는 시간을 두고 이행해야 하고 그 결과도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민생’의 문제는 당장 국민들의 눈초리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국민의 생활’에서 챙겨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치안과 재난 예방뿐만 아니라 골목 상권 보호, 대학 등록비 인하, 보육 지원, 노령연금 확대, 의료 지원 확대, 세금 부담 경감, 청년 일자리 창출, 정년 연장에 이르기까지 대선 기간 중 후보들의 공약들 가운데 대부분이 민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을 민생 챙기기의 핵심은 실질적인 소득 증대입니다. ‘실질적’이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소득이 증대되거나 복지 지원이 증대되어서 간접적으로 소득이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생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세 가지의 선택이 가능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정부의 순지출을 늘이는 것이는 것입니다. 무상 보육과 교육처럼 국민의 개인적 지출을 정부가 대신 부담해 줌으로써 국민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민생 관련 지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다른 부문의 예산을 감축함으로써 제한된 재정 지출 총액 한도 내에서 대안을 찾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국방비, 문화 예술 재정을 감축시키고 복지 예산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민생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도록 규제 완화와 행정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재고 감소→생산과 이윤 증대→고용 증대→소득 증대→투자와 소비 증대의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시행하기는 간편하지만 세금을 늘여 재정을 확보해야 하므로 국민의 호응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증대시키지 않으려면 정부의 부채를 늘이거나 통화량을 증대시켜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서 교훈을 얻듯이 정부 부채를 늘이거나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것은 뒷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정부 재정적자는 오히려 줄여야 할 숙제이고 물가 상승은 급여 근로자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킬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측면에서 강한 정책 의지와 영특한 전략적 선택을 드러낼 수 있지만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을 약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부문의 종사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시킬 수도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세 번째이지만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하는 어려움과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인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새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는 몸속의 혈액처럼 쉴 새 없이 순환해야 합니다. 어느 한 부문에서 ‘멈춤’이 발생하면 금방 다른 부문의 기능 저하나 마비가 발생합니다. 한 동네 가게가 줄줄이 문 닫게 되면 동네 은행도 문 닫게 되고 다른 지역 기업의 자금 조달도 어렵게 됩니다. 몸 관리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만 진단과 처방의 책임은 의사에게 있는 것처럼 정부는 민생경제의 빈혈이나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거나 해소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민생’ 대통령에게 적어도 두 가지는 요청해야 합니다. 첫째는 공약에 나타난 대증요법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생 경제의 난맥에 대한 엄밀한 진단과 분석과 논의를 통해 아픔의 실체를 파악해야 합니다. 저소득층, 중소기업, 청년층과 고령층을 무작정 지원한다고 해서 경제적 건강이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자칫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외 경제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와 동기부여를 확대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화해야 합니다. 둘째는 시장경제에서 정부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의 역할이므로 정부의 정치적 일정과 기대치로 민생을 끌어당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무수히 많은 기업과 개인(가계)이 참여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시장은 이미 정부가 통솔하기에는 벅찬 상대가 되었음을 인식하고 어설픈 정보와 전략을 흘려서 민생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약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은 불경기가 아니라 ‘불확실성’입니다. 정부는 경제가 선순환 구조를 활발하게 가동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기업과 개인은 당장의 이익보다 더 큰 미래의 이익에 투자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화나 예수님 말씀의 소재의 대부분은 ‘민생’과 관련된 것입니다. 시민의 실질적인 삶 속에서 구원의 은총을 실감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공통적으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민생’을 주관하시지만 땅 위의 현실에서 개인 스스로가 ‘민생’을 꾸려가는 자율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 천막 안으로 만나를 배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만나를 얻은 것은 천막 안이 아니라 천막 밖에서입니다. 그들이 천막 밖으로 움직여야만 만나를 얻을 수 있었듯이, 민생 대통령은 국민들이 움직여 노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민생’ 대통령이 섬겨야 할 대상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개개인 국민이므로 ‘민생’ 대통령의 고민은 진지해야 하며 엄숙해야 합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실행위원)
* 이 글은 경찰공제조합회보 2013년 1월 발행호에 게재한 내용을 기독교 관점에서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