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살아있음’은 어떻게 보이고 있는가? 이는 ‘장차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간밤의 잠에서 깨어난 나의 오늘 아침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문득 던진 질문이다. 거울 속의 눈동자와 마주보고 있는 나는 정말 40여년을 살아온 것일까? 지난해 아니 10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무엇이지? 기억 속에서 긴 세월의 이야기를 더듬어낸다. 적어도 35년 정도의 삶은 내 기억이 확인해 준다. 코흘리개가 중년 어른이 된 것이다. 결코 아름답지 못한 내 모습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이 아침에 미소 지을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집에서 화초를 잘 가꾸는 사람을 만나면 존경심을 느낀다. 그는 틀림없이 부지런하고 세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인장도 몇 달을 못 넘긴 적이 여러 번 있다. 선물로 받은 적도 있고 스스로 구입한 적도 있으나 모두 물주기에 부주의하여 선인장이 고사(枯死)한 것이다. 결혼 후에는 아내도 부주의한 화초 가꾸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애완동물과도 친분이 적지만 식물에게 조차 인기가 없다. 그런데 지난 3월 아내가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갑자기 화분이 수십 개가 생겼다. 대부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눠줬지만 아내 작업실과 집 베란다에 대여섯 개가 남게 되었다. 나도 이번 기회에 이미지 변신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에 난(蘭) 화분 4개를 가꿔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금붕어와 장수풍뎅이에게는 먹이를 줄지언정 화초에는 물 한 방울 뿌려주기에 대단히 인색했다. 아내도 무관심했다. 나의 외롭고도 서투른 화초 가꾸기는 4개월 후에 의외로 성공적인 결실을 나타냈다. 서양란 화분에서 새롭게 보라색 꽃이 피어났고 벽돌색 흙 화분의 동양란이 흰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식물에게서 애정 표현을 답례로 받았으며 생명이 자라난 기쁨을 재발견했다.
난(蘭)은 오늘 아침에도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자라난다는 것이리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장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의미가 없다. 나의 육체는 점진적으로 쇠퇴해 가고 있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기 위해 자라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나의 존재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설계하고 실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때로는 열 살 어린이가 성장통을 겪듯이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성숙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도 내 영혼이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난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꽃을 피우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매주 물을 흠뻑 주는 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인간(포도나무 가지)이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농부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버려진다고 기록되어 있다(요15:1-7).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나를 인도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길임을 오늘 다시 깨닫게 된다.
주) 이 글은 경상학부 겨자씨 선교위원회에서 2005년 2학기 발간 예정인 책자에 실을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