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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환경칼럼 20> 볼리비아 대지(大地)권리법”의 역설 2019-12-01 23:20:59
작성자 : 김태황   조회 171, 추천 11


* 아래 글은 월간지 <에코비전 21>(www.ecovision21.com)에 격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국제환경칼럼>으로써 2019년 12월호 pp.54-55에 실은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볼리비아 “대지(大地)권리법”의 역설

  남미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4연임의 과욕을 부리다가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는 원주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6년 권좌에 올라서 한동안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볼리비아의 빈곤과 갈등을 크게 개선하지 못한 채 올해 10월 대선 부정선거로 인해 국민의 항거를 자초했다. 심지어는 대통령 경호대마저 시위에 참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자연 생태계의 보호와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자연환경에도 “권리”를 부여하자는 획기적이고 강력한 자연보호 의지를 주창했다. 볼리비아 의회는 “대지(大地)권리법(Law of the Rights of Mother Earth)”을 2010년 12월 최종적으로 입법화했다. 이 법령은 적용 대상과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이지만 인간 활동으로부터 지구 환경을 보존하자는 세계 최초의 대지권리법이다. 법령의 제7조는 핵심적인 7개 권리 항목을 명시하고 있다. 생태계의 존속, 생명의 다양성 보존, 물의 순환 기능 유지, 맑은 공기의 유지, 대지 구성요소들의 균형 유지, 인간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자연 생태계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복원, 인간 활동으로부터 야기되는 오염에서 자연의 온전한 보존 등이 가능하도록 자연(대지)이 “권리”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안데스 원주민들이 숭배하는 생명, 풍요, 대지의 여신 파챠마마(Pachamama)가 대자연을 영원히 창조적으로 보호한다는 종교적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반영한 법안으로 여겨진다.
  물론 모랄레스가 전체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는 원주민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이 법을 제정했고 개발반대와 환경보존의 프레임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집권 기간(2006-2018년) 중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증가율은 3.2%로 인접 국가들 가운데 브라질(1.2%)과 아르헨티나(1.3%)와 칠레(2.3%)보다는 상당히 높았지만 페루(4.2%)와 파라과이(3.22%)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2015-2017년 상품 및 서비스의 수출은 매년 5-6%씩 감소했다. 제조업 생산 비중은 집권 전 2005년 12.5%에서 2018년 10.3%로 감소했다. 환경친화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집권 전인 2005년 1.3톤에서 2017년 1.8톤으로 증가하였다.
  대지권리법을 통해 대자연의 권리(!)를 지키려했던 대통령이 정작 국민의 권리는 지키지 못하고 몰락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자연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려면 지속가능한 관리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볼리비아의 대지권리법은 세계 최초이자 최강의 자연보호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물과 공기와 땅이 인간의 사회경제적 활동으로부터 오염되지 않고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려면 이 법령을 시행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국민이 법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하고 법 이행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법이 있으나 마나 효력을 상실하거나, 공공 행정이 법 취지와는 상충되도록 운영된다거나, 국민이 법 운영과 집행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법령은 사문서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새 대통령이 원주민에서 선출되지 않는다면 대지권리법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다.
  경제활동과 산업을 전환시키는 일도 중요한 과제이다. 볼리비아의 경우처럼 환경보존을 위해 광물 자원 개발을 규제한다면 대체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광물 자원 개발에 종사해 온 국민들이 소득 감소와 산업 쇠퇴의 직접적인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대책을 제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자율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변화에 의해 기존의 경제활동과 산업을 전환해야 하고 그 사회적 비용을 사적으로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대지권리법을 신령한 선각자처럼 선포하였지만 파급효과를 분석하고 보완적인 대책을 책임성 있게 이행하는 평범한 역량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환경보전과 국민의 삶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이다. 요컨대 자연의 존속 권리를 주창하면서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이 위협을 받는다면 설득력이 약하다. 환경보전은 자연환경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인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듯이 인류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면 자연환경 자체의 보존도 무의미하다. 모렐레스 정부와 의회는 대지의 여신 숭배자이었으나 국민의 삶을 섬기는 지도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고지대에 즐비한 빈민촌과 극단적으로 대조되도록 건축한 29층 대통령궁은 자연환경 보호나 국민의 삶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지속가능한 자연환경 보호의 공동 주체는 자연과 인간이다. 자연은 순리대로 움직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다. 우리가 자연환경을 보존하려면 자연과 인간의 삶을 더 공감하고, 더 부지런하게 살피고 더 지혜롭게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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