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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쉬망의 EU통합 리더십을 되짚는 이유 2021-06-30 06:54:16
작성자 : 김태황   조회 43, 추천 4


* 아래 글은 <한국경제> 신문 2021. 6. 30. A35면에 게재한 [시론]이다.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1062904781

쉬망의 EU통합 리더십을 되짚는 이유


1950년 4월 23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은 시골 자택으로 휴가를 떠나려고 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문서를 하나 받았다. 장 모네의 유럽 경제통합 초안이었다. 쉬망의 고심거리를 알고 있는 비서가 급하게 찾아온 것이다. 5월 9일 역사적인 ‘쉬망선언’이 발표됐다.

쉬망은 프랑스와 독일의 철강·석탄 생산을 다른 유럽 국가가 참여하도록 개방해 공동 관리할 것을 제안했다. 5년 전 적군이었던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호응했다. 쉬망은 자국 프랑스 총리보다 상대 독일 총리를 먼저 설득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연대를 형성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30년 사이 두 차례나 세계 전쟁터가 된 유럽에서 평화의 정치경제학이 마법처럼 피어올랐다. 유럽연합(EU)은 1985년부터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하고 쉬망선언을 기념한다. 쉬망은 모네와 더불어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쉬망선언은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동부와 독일 서부 지역을 아우르는 완충 국가 ‘로타링기아’를 설립하자고 주장한 모네의 유럽 경제공동체 이론을 날씨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혔다. 정직하고 성실한 리더가 설득력을 발휘한 것이다. 사실, 쉬망선언은 탁월한 수사학적 표현이나 극적이고 감동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전후 에너지 자원 전쟁의 재발을 예방하고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갈구하는 3분짜리에 불과한 연설문이었다. 그런데 유럽경제 발전을 위한 공동의 생산 기반을 제안했고 경제활동 연대의 가치관을 제시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와 통상환경은 폭풍우가 언제 몰아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미·중 패권경쟁과 한·일 대립만 탓할 일이 아니다. 정치와 경제 리더십의 부재가 본질이다. 글로벌 정세와 변화 구도에 대한 통찰력과 가치관으로 설득력을 발휘하는 정치외교적 리더가 안 보인다. 글로벌 생산체계 재편, 반도체 전쟁, 디지털 통상과 사회적 가치 중심의 통상규범을 돌파할 전략적 자율성이 없다.

2011~2020년 한국의 중국에 대한 상품 수출과 수입 의존도는 각각 전체의 25.4%와 19.1%다. 그렇지만 중국과는 경제적 연대는 있지만 신뢰와 가치관의 연대가 없다. 미국과는 신뢰와 가치관의 연대가 있으나, 의심받기도 하고 경제적 연대는 헐렁해졌다. 일본과는 경제적 연대와 신뢰, 가치관의 연대가 모두 무척 약해졌다. 한국이 설득력 있는 정치력과 경제 관계로 국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대상국이 막연해지고 있다. 452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세계 8위)을 쌓아두고도 통화스와프 연장에 눈치를 보며 매달려야 한다. 57개 국가와 17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하고 있으나, 국제금리와 환율 변동, 유가와 원자재 수급 변동, 반도체 수급 변동의 소나기 피하기에 급급하다.

각국 경제와 글로벌 통상의 화두가 된 저탄소 친환경 정책에 부응해 정부는 ‘한국판 그린딜’, ‘2050 탄소제로’ 전략을 호기롭게 선언했다. 그러나 2008년의 ‘지속가능발전법’, 2010년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흔들어 깨운 정도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경제체제로 전환하겠다면서, 환경비용이 우리 업체의 수출입과 대외 통상구조에 끼칠 파급 영향에 대한 준비는 걸음마를 익히는 수준이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영국으로 망명해 대독 항전을 펼쳤던 드골 장군은 전후 독일의 석탄과 철강산업을 해체하려고 했다.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뻔했다. 모네의 실용적인 경제적 설득력과 쉬망의 통찰력 및 가치관의 설득력이 평화의 정치경제 공동체를 이뤄냈다. 대한민국을 주변 악어들의 입에서 지키고, 그 등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악어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해야 한다. 미국의 구조적인 노동 생산성 저하, 중국 경제체제의 만성적인 신뢰성 결여, 일본의 역사적 불공정성 등의 급소를 엮어 글로벌 상생 협력주의로 이끌어낼 한국판 설득력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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