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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알곡'은 오래된 경작지에서 나온다 2022-05-14 11:43:59
작성자 : 김태황   조회 99, 추천 9



*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e대한경제>의 [오피니언] [시론]란의 5월 칼럼으로써 2022. 5. 9(월) 23면에 게재된 전문(全文)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5080902015760950


'알곡'은 오래된 경작지에서 나온다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고 대만에 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로 한국 2.5%, 일본 2.4%, 대만 3.2%를 적용한 결과이다. 예측치가 달라질 수 있고, 환율의 변동에 따라 달러화로 표기하는 GDP 수준이 달라지므로 장담할 수는 없다. 세 나라 가운데 경제 전체 규모로는 일본 인구가 한국의 2.4배이므로 현재와 달라질 것이 없다. 하지만 일본 엔화 가치의 하락과 대만 경제의 고성장이 지속된다면, 1인당 GDP는 늦어도 2-3년 내 대만, 한국, 일본의 순서로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2012년 아베의 재집권 초기부터 8년 동안 밀어붙인 통화 공급과 재정 확대, 규제 개혁의 화살은 과녁에 도달하지 못했다. 제로 금리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부진하고 기업투자가 저조하여 생산성 향상의 동력이 떨어졌다. 도요타나 소니 등 몇몇 글로벌 기업의 부활은 눈부시지만, 국가 경제구조의 혁신은 더딘 상태다. 반면에 2016년 집권한 대만 차이 총통은 대만 경제의 ‘알곡’에 집중했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이 반도체임을 간파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첨단기술 투자에 집중했다. 중국의 하청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설비투자 지원과 기업 친화적 경제구조 혁신 전략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일본 경제는 일자리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저하의 늪에 빠져있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장기 불황의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타성적으로 소비를 절제하고 생산비를 아끼며 안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만 경제는 전통적인 중소기업 중심의 체제를 첨단 전자 부품 기술 중심으로 산업과 사업 구조를 기민하게 전환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10대 기업에 포함되는 대만 TSMC의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었다. 일본은 과거와 현재에 매여있고, 대만은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일본 경제의 쇠락 늪을 경계해야 한다. 대만 경제의 기형적인 산업 편중화도 주의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의 원동력과 적응력과 순발력이 어우러지도록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경제구조를 혁신하되 축적된 기반을 섣불리 무너뜨리지 않아야 하고, 기존 체계를 발전시키되 미래 지향적 안목으로 개혁해야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산업과 경제에 대한 정치적 이념의 지배력이다. 아베 정부는 정치적 판단으로 경제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오판했고, 차이 정부는 경제적 판단으로 정치적 설득력을 발휘했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 가운데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26개 과제는 혁신성장과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분야 26개 국정과제가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민생경제 등에 역점을 둔 방향과 사뭇 달라 보인다. 하지만 차별적인 정책 효과를 5년 이내 달성하려는 강박감에 함몰된다면 기대보다 우려가 커질 것이다. 지난 5년간도 그랬고 그 이전 역대 정부에서도 그랬다.

인류 역사에서 최고 집권자는 전임자와 차별되기를 희구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2인자를 곁에 두기를 꺼린다.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는 더욱 예민하다. 이명박 정부가 기후변화와 저탄소 에너지 공급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2009년 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설립했으나 박근혜 정부는 ’녹색‘을 퇴색시켰고 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로 격하시켰다. 박근혜 정부에서 설립한 국민대통합위원회는 극심한 사회 갈등과 분열을 딛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창한 포용적 성장은 OECD와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
이 공감대를 형성한 주요 정책 방향이지만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에서는 흔적을 지웠다.

과거 정부의 정책은 새 정부의 경쟁 대상이 아니다. 밑거름으로 활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 정부의 정책도 차기 정부 정책의 밑가지가 되도록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임기 중 업적을 내세우려는 과욕은 감옥 문을 열게 된다. 물론 정책 방향과 추진방안을 혁신해야 한다. 하지만 5년마다 산업 기반을 뒤흔드는 정책 변화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성취를 기반으로 과도한 정책 우월감에 몰입되었던 과오를 윤석열 정부가 답습해서는 안 된다.

알곡은 오래된 경작지에서 나온다. 섣부르게 밭을 갈아엎고 검증되지 않은 신품종을 파종한다고 해서 알곡을 추수하는 것은 아니다. 토질을 배양하고 토질에 맞는 작물을 가꾸어야 한다.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추월한다고 통쾌할 일도, 대만에게 추월을 당한다고 허탈할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알곡 경제를 이루어 갈 토질과 작물을 살피는 농부의 안목과 경륜이 절실하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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