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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의 공포 2022-06-11 00:26:06
작성자 : 김태황   조회 71, 추천 5


*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e대한경제>의 [오피니언] [시론]란의 6월 칼럼으로써 2022. 6. 9(목) 23면에 게재된 전문(全文)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6071625584290847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의 공포


경유를 사용하는 화물차 운전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부터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고, 리터당 가격이 2000원을 돌파하며 믿기지 않는 현실이 태연하게 전개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4% 상승하여 1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가공식품 가운데 국수는 무려 33.2%, 밀가루와 식용유는 각각 26.0%와 22.7%가 상승했다. 미국의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41년 만에 최고치인 8.5%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의 단일통화국인 유로존 19개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도 8.1% 상승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식량기구(FAO)에 의하면, 지난 4월 5대 식료품류 종합가격은 2년 전에 비해 66.7%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 상승세는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의 시기를 연상케 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짙어졌다.

5월 22일 2년 만에 뒤늦게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도래에 공포감을 실감하면서도 뾰족한 정책 대안이나 기업 전략을 제시하지 못해 난감한 표정이었다. 각국이 서둘러 시행하는 금리 인상 공조 대책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산업은 또다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의 공포에 짓눌리게 될 것이다. 엄살이 아니다.

이번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유발 구조와 파장은 일시적 물가 상승과는 족보가 다르다. 특정 국가나 일부 품목에 국한된 양상이 아니다. 코로나19를 벗어나는 과정의 반작용만이 아니다. 길게 보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어마어마한 양적 완화의 통화량 공급이 원죄일 것이다. 각국에서 과잉 공급된 유동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과정에서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가 엄습했다. 실질 경제성장보다 과잉 공급된 통화량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도 전에 코로나19로 유동성이 경직되었다. 온 세계가 바이러스 확산 대책과 손실 보상을 위한 재정 지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불에 기름을 들어부은 양상으로 번졌다.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은 여전히 터널 안에 갇혀 있다. 화폐 가치는 하락했고, 생산비용과 거래비용의 부담은 증대되었다.

공급 감소가 없는 초과 수요에 의한 물가 상승은 경제성장의 거울이므로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공급 감소에 의한 과잉 수요는 물량 확보가 우선이므로 생산성 향상이나 경제성장 없는 물가 상승을 가속화 한다.

인플레이션의 공격력은 빈곤층에 더 치명적이어서 자산과 소득 양극화는 심화된다. 빈부격차를 줄이려고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으로 겨우 고무줄을 매달았지만, 인플레이션에 의해 고무줄은 순식간에 탄력을 잃게 된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인건비가 상승하고 산업 생산과 투자가 감소한다면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테그플레이션의 우려는 깊어진다.

일부 산업에서는 인플레이션에 편승해서 생산비용의 상승분보다 더 큰 폭의 가격 인상으로 추가 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여유 있는 자산가는 부동산 투자로 인플레이션 함정을 건너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거품이 꺼지게 되면 자산 가치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국내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므로 정부가 내세울 마땅한 방패가 없다. 금리를 연이어 인상하고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비축 물량을 방출해도 안 되면 가격 통제의 규제를 시행할 수도 있지만, 파생되는 부작용도 크다. 특히 미국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큰 걸음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세계 각국도 불가피하게 금리 인상과 환율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기업활동과 산업은 사익과 공익을 추구하기 위해 기회를 잡는 행위랄 수 있다. 손실이 날 수도 있지만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 맞서 도전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 기업과 산업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거나 미중갈등과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는 없지만 곡물 식단을 조절하고 에너지 소비 패턴을 바꿀 수는 있다. 우리 정부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글로벌 공급망의 통로를 다각도로 개척해야 한다. 외교를 위한 경제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외교로 과감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생산기간이 긴 건설산업의 경우, 공공 계약에서 물가 변동 반영의 시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발주기관이 특약사항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는 상생협력을 해야 한다. 주택산업은 후분양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모험에는 불편함과 위험도 따르지만 적응력과 체력도 강화될 수 있다. 어차피 매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다.

김태황/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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