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대한경제 <오피니언> [시론]란에 2024. 8. 2. (23면) 게재된 칼럼 전문(全文)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407311117140500317
플랫폼 경제와 ‘폰지 사기’
2021년 8월 ‘머지포인트(mergepoint) 사태’가 발생했다. 머지플러스라는 업체가 머지포인트라는 전자상거래 지급수단(일종의 상품권)을 개발하여 20% 할인된 가격으로 선불 판매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이용자가 미리 지급한 대금을 투자와 생산 활동에 투입하지는 않았다. 수익 창출의 사업구조가 아니었으므로 결국 수백억원에 이르는 할인 차액 손실을 결제하지 못하고 사기와 횡령을 저지르게 됐다. 주도자인 사업가 남매는 지난해 10월 각각 징역 4년과 8년을 확정 판결받았다. 법원이 일종의 ‘폰지 사기’로 판단한 결과이다.
이탈리아 출신 미국 이민자 찰스 폰지(Charles Ponzi)는 1920년대 초 엄청난 금융 사기극을 벌였다. 국제우편 답장 쿠폰을 할인 구입하여 차액으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7개월만에 약 3만명의 투자자를 모아 당시 금액으로 무려 1500만달러를 유치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익 창출 활동 없이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와 자신의 수익을 충당하는 유령투자 사기를 벌였다. 폰지 사기는 피라미드 다단계 판매 사기로도 응용되었다. 사기, 횡령, 불법 유용이 자본과 투자의 순환구조로 교묘하게 위장한 셈이다. 100년이 지나도록 고수익의 유혹과 유령투자의 함정은 여전하다.
최근 불거진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 티몬과 위메프(티메프) 사태도 폰지 사기를 연상케 한다. 사업 초기의 확장단계에서 불가피한 손실 과정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한 사업방식의 도덕적 해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기업인 큐텐은 2021년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의 3.5배 수준이었고 누적 결손금도 4300억원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티몬, 2023년 위메프를 각각 적자경영인 상태로 인수했다. 이후 전자상거래 업체 3개 추가 인수를 단행했다. 이제 회생법원이 자산과 채권을 동결한 후 티메프의 기업회생 절차를 결정하든 부도 청산으로 결정하든 1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소비자와 판매자들의 피해액은 보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머지포인트 사태의 여파로 지난해 9월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었다. 제25조의 2를 신설하여 티메프와 같은 전자금융업자는 선불충전금을 50% 이상 신탁 또는 예치하거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함으로써 판매대금을 별도로 관리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선불충전금은 이용자의 재산이며 전자금융업자가 임의로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9월 15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법안의 시행을 두 달 앞두고서 티메프 사태가 터졌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사업방식은 디지털 경제의 혁신모델이다. 이번 티메프 사태가 3년 전 머지포인트 사태와 닮은꼴로 재현되는 듯하더라도 혁신적인 플랫폼 사업구조가 제한될 수는 없다. 오히려 공정한 사업방식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법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지만, 금융당국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시장 신호 분석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운영체계의 강화도 절실하다.
큐텐그룹의 경영 부실은 시장경제의 순환구조와 조절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위험한 선택의 결과이다. 타인의 노동과 자본을 활용하여 자신의 수익을 증대시키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참여 주체들이 호혜적인 거래 관계를 형성해야 시장경제가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플랫폼 중개업체인 티메프에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한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인데 납품 후 40-60일 후에야 판매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는 거래 관행은 비정상적이고 부당하다. 자본잠식 기간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아야 한다. 거래가격에 이자를 미리 반영할 수 있는 외상거래와는 다르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사업방식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와 전자지급결제 업체(PG사)는 자금 결제 측면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비대칭적 사업구조가 지속된다면 플랫폼 전자상거래 금융 사고는 경기변동기에 확산될 소지가 크다.
자본 순환은 시장경제의 동맥이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동맥에 활력을 공급하는 심장이 될 수도 있고 치명적인 급소가 될 수도 있다. 자충수에 몰리지 않으려면 참여 주체들이 공정하고 호혜적인 거래 관계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불공정한 거래에 의한 자본 순환의 일방적인 지배력은 동맥경화를 유발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매질이 필요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