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대한경제 <오피니언> [시론]란에 2024. 9. 9. (23면) 게재된 칼럼 전문(全文)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409051033467830039
산업 활성화가 민생회복이다
일용할 양식은 오늘도 필요하고 내일도 필요하다.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약육강식의 글로벌 시장경쟁에서는 오늘의 양식이 내일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내일 사용할 ‘필살기’이지만 오늘 단련해야 한다.
“민생 회복”은 2022년 대선과 올 총선을 넘어 정치권이 줄기차게 외쳐온 함성이다. 8월 초 국회는 전 국민에게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자는 특별조치법을 야당 연합 주도로 통과시켰다. 민생 회복이 절실함은 몇 가지 경제지표로도 드러난다. 올 3~7월 소매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매월 2.0~3.6% 감소했다. 소매 판매의 감소세는 2022년 하반기부터 지속되었기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제활동 위축은 누적되어 왔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자 수는 985,868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이다. 한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3년 155%에서 2022년 204%로 상승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분석에 의하면, 올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9%로 지난해보다 낮아졌지만, 미국(71.8%), 일본(63.0%), 중국(63.7%), 유로존(53.2%)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 재정지출을 증대해도 민생 회복은 거듭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결국 한국은행과 KDI 모두 지난 5월에는 우리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했으나 수출의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지난달에는 다시 소폭 하락 재조정했다.
민생 회복의 노력과 기대감에 조급함이 앞설 수는 있다. 하지만 국내외 대응책과 법 제도의 운용은 오늘의 일용할 양식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전 국민 25만원의 지원금은 오늘 유쾌한 만찬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한 13조원의 재정지출은 내일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등한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무분별한 민생 지원은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국내 산업을 위축시키고 민생을 더욱 혹독하게 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더디고 우회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산업 활성화가 오히려 실질적인 민생 회복의 버팀목이다.
산업 활성화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국내 고용과 생산과 소득의 증대에 집중된다. 종사자들의 민생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견인할 수 있다. 이에 못지않게 고려해야 할 요체는 경제안보 또는 산업안보의 간접적인 효과이다. 치열한 자국 우선주의와 경쟁적 보호 무역주의가 팽배해지는 추세에서 산업 활성화는 더 이상 국내 이슈만이 아니다. 국내 산업은 언제든지 어떠한 방식으로든 글로벌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방어용이든 공격용이든 ‘필살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미중 패권경쟁에서 양국 모두 우리 반도체 산업 역량을 필요로 한다. 특히 중국의 경우 우리 반도체 기술과 장비 공급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한미 경제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반작용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필살기’ 산업이 다른 산업에 대한 방어막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 EU, 일본, 중국이 모두 반도체 산업 생태계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국익과 민생을 위한 ‘산업 필살기’임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5년간 527억달러의 보조금 지급 외에도 750억달러 규모의 저금리 대출과 25%의 세액 공제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EU도 430억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고, 일본은 253억달러, 중국은 2014년부터 약 760억달러의 반도체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긴 하다. 국회에서도 뒤늦게 총 100조원 규모를 지원할 만한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속도감과 지원 방식은 턱없이 안일하다. 모든 경쟁국이 WTO 보조금 협정을 무시하고 직접 보조금으로 적극적인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세액 공제와 행정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시스템 반도체와 장비 부문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취약하다. 반도체 전체의 가치사슬에서 메모리 부문은 9%에 불과하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의 올 5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중국(24%), 대만(18%)에 이어 일본과 동일하게 17%에 이르지만, 부가가치 창출 기준으로 보면 12%로 미국(38%)의 3분의 1이하에 해당된다.
반도체 산업의 편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필살기’ 산업을 지렛대로 삼아 경제안보와 산업안보를 강화하여 산업 다각화로 나아가자는 소견이다. 산업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는 민생 지원금 배분의 선심쓰기는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