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경제, 통상정책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프랑스 쏘시에떼제네랄은행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0.3%로 낮추었는데 한국은행의 0.8% 하향 전망치보다도 상당히 낮다. 당장 추경예산 30조원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바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매출 기반이 확충되거나 소비와 투자 심리가 반전되기는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은 자국 우선적인 보호 무역주의의 서막일 뿐이고, 새 정부가 직면할 글로벌 통상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은 확대될 것이다.
새 정부는 산업혁신에 국내 경제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민생경제 회복, 내수 활성화와 경기 부양을 위한 거시적 재정 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 정책이 필요하지만 경제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기 위한 목적과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적 경기 부양책으로 점점 날카롭고 집요해지는 국내외 변동성과 갈등 구조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잠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포도당 주사약보다는 핵심 근력을 강화해야 한다.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가 필요하지만 치료제는 아니다. 성장통을 겪더라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모든 산업에는 혁신 동기와 요소가 있다. 산업 내 경쟁 심화와 시장 변동성이 혁신을 촉진시킬 수 있다. 생산방식과 생산물, 판매방식과 수익구조, 시장 참여방식 등의 혁신 요인과 요소를 재발굴해낼 수 있다. 기업이 산업 내 혁신을 활성화하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하는 동기부여 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규제 개혁은 오래된 숙제이지만 획기적으로 재시도돼야 한다.
산업구조의 혁신은 글로벌 경쟁구도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이다.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현재 주력 산업과 인공지능(AI)과 관련 서비스, 바이오의약, 양자 기술 등 미래 첨단 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정부가 혁신 승부수를 발동해야 한다. 미국과 EU와 중국이 불공정하다는 국제적 비판을 무릅쓰고 각각의 방식으로 막대한 보조금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려는 정책 의지가 경제정책의 중심을 차지한다.
새 정부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정책에 대한 인식과 기조를 혁신해야 한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보호 무역주의, 경제안보 이슈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수출 촉진 정책이나 자유무역 활성화 기조를 회복하자는 측면이 아니다. 복합적인 글로벌 변동성에 유연하고 자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개방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필살기를 갖추어야 한다. 먼저 글로벌 경쟁구도에서 비교우위를 발휘하는 주력 및 첨단산업 역량과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이는 산업정책이 국내용이 아니라 글로벌용이 되도록 혁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 경제가 일방적인 공급망 의존도를 조절하려면 안정화와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인도, 칠레 등 남미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또한 개방주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동맹 그룹을 확대해야 한다. 유보해 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이나 협의를 재개하고 있는 한중일FTA 논의와 같은 글로벌 통상의 완충지가 필요하다. 무역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무역의 변동성을 완충하고 국제통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동료국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무력화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로 그대로 회귀할 수는 없지만 새 정부는 소(小)다자주의 체제의 재세계화(re-globalization)로 나아가는 통상 기조를 고려할 수 있다. 재세계화는 당위적인 기대가 아니라 역사적인 방향이다. 1930년 전후 대공황 시기의 극심한 보호 무역주의 이후 GATT 체제(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성립했고, 1970-80년대 초 석유파동 시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화가 촉진되었다. 새 정부는 국내 산업과 국제통상의 유기적 관계와 시너지효과의 산업통상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전략적 개방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재세계화의 이익(국익)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