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31조 8000억원을 의결했다. 지난 5월 1차 추경 13조 8000억원의 2.3배이다. 당초 삭감됐던 본예산의 6.8%가 추경으로 다시 증액됐다. 2차 추경의 38.1%인 12조 1000억원을 민생경제 회복과 소비 진작을 위해 전 국민에게 배분한다. “소비쿠폰”이라는 별명을 달았다. 이는 총 재정지출의 1.7%에 불과하지만, 국방비 예산 총액 61조 6000억원 가운데 급여성 전력운영비를 제외한 실질적인 방위력 개선비 18조 700억원의 67%에 해당하는 예산이다. 연구개발(R&D) 예산의 40% 수준이다. 2차 추경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는 국채 21조 10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가채무는 1300조원을 넘어 국내총생산(GDP)의 50%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쿠폰”의 전 국민 무상 배분은 소비를 증대시키고 총수요 측면에서 경제 회복의 기반 마련에 기여할 수 있다. 취약 계층을 위한 차등적 배분은 일회적이나마 기본적인 생계의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긴급 생계(생활)지원금 배분에 이은 소비 진작책이다.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현금 직접 지급과 세금 환급 등을 통해 국민의 소비 진작을 유도했으며, 일본도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소비쿠폰을 배분한 적이 있다. 일시적 소비 진작 효과는 있었으나 경제구조적 효과는 미미했다. 관건은 일시적 소비 진작책이 지속적인 소비, 생산, 투자 확대의 승수효과를 얼마나 창출할 것인가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은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세이다. 1990년대 외환위기 이전까지 6-7%대였던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대로 하락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1.9%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이란 가상의 이론적 예측치이다. 자연적인 실업률 수준으로 완전 고용이 이뤄지고 물가상승과 같은 부작용 없이 모든 생산요소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투입되어 최적의 생산 여건에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나타낸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생산성 향상이 최우선이다. 기술 혁신, 투자 환경 개선과 유인력 제고, 인적자본과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 노동시장 개혁 등이 불가피하다.
총수요 확대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수요 확대가 촉매제가 되어 생산과 투자가 확대되고 소득이 증대되어 다시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창출되어야 한다. 소비(수요) 확대가 일시적 현상에 그친다면 오히려 공급(생산)과 수요(소비)에 교란이 유발될 수 있다. 소비 확대를 기대한 과잉 생산이나 반대로 일시적 초과 수요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총수요 확대는 총공급 확대가 동반되어야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쿠폰에는 달콤한 함정이 있다. 소비쿠폰은 기획된 마케팅 할인쿠폰처럼 일방적 혜택이 아니다. 공짜처럼 여겨지지만, 각자가 납부한 세금으로 조성된다. 첨단산업 연구개발 지원이나 청년 창업지원이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에 투입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집행하는 예산이다. 기회비용이 크다. 소비쿠폰의 사용이 추가 소비가 아니라 기존 소비를 대체하거나 저축으로 이어진다면 민생경제 회복이나 지역경제 활성화의 정책 목적은 약화된다. 이 경우 정부의 직접 재정지출보다 경기 활성화 기여도가 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소비쿠폰은 일시적인 소비와 소득 증대에 유효할지라도 본질적인 잠재성장률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의 총공급 측면은 간과되기 때문이다.
현재 민생경제 부진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세에 의한 체력 약화의 현시적 결과이다. 제2, 제3의 소비쿠폰 배분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구조적인 잠재성장률 향상을 위한 예산 집행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칫 소비쿠폰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된다면 소득 주도 성장론의 사회적 갈등이 재현될 수도 있다. 민생경제 회복 정책은 취약 계층의 적응력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적 측면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는 정치경제적 측면을 병행하되 구분하여 추진해야 한다.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단기적 성과를 드러내려는 정부의 의욕이 앞선다면, 아이에게 솜사탕을 쥐어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아이에게 건강은 추상적이고 사탕 맛은 현실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