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미 관세 투자 협상에서 빈손으로 귀국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바로 이어 출국했다. 9월 4일 미국과 일본이 세부 투자방식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이 우리에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이 백지수표로 투항했기 때문이다. 우리 상품 수출의 19%를 차지하고 자동차의 경우는 무려 49%나 되는 미국 시장에 대한 변동성이 관세협상 타결과 정상회담 이후에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일본과의 합의사항을 가이드라인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는 미일 합의 내용은 참고사항일 뿐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세협상에서 우리 협상단은 일종의 자충수를 둔 셈이다. 투자 약속은 유연하게 이행할 수 있고 투자방식도 공공 대출이나 보증으로 간접적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우리 경제규모에 무리가 될만한 3500억달러 규모를 합의했다. 정부 예산의 67%, 외환보유고의 85% 수준이고, 지난 2010-24년간 대미 상품무역 흑자 총액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하지만 미국은 전액 현금 투자, 미국 주도적인 투자 결정과 수익 배분 방식을 꼼꼼하게 문서화해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거부하면 25%의 고율 관세를 그대로 부과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근로자 체포 및 구금 사건은 한미 관세 투자 협상에 새로운 국면을 유발했다. 이번엔 미국이 자충수를 뒀다. 사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단속국이 할 일을 했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외국 기업이 전문 인력을 데려와 미국인을 훈련해 주길 바란다“는 상반된 의견을 표명했다.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포함한 475명의 근로자를 한 현장에서 체포하여 구금한 사건은 미국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서 전례가 없다. 한국과의 투자 협상을 압박하고 우월적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였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합법적인 비자 소지자도 불법 체류자로 구금하고 취업비자의 구조적 맹점이 드러나면서 국면은 반전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급한 불을 꺼야 한다. 하지만 토끼몰이에 조급하게 쫓겨서는 안 된다. 3개월 손실을 막으려다가 3년 치 손실을 떠안을 수는 없다. 우리가 배수진을 치고 역공할 수단도 있다. 먼저 조지아주 사건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의 확산과 그 심각성을 강하게 부각해야 한다. 취업비자의 발급 원활화만이 아니다. 기업의 투자 비용과 리스크 증대에 따른 투자 이행의 지연과 철회, 필수 인력 수급의 어려움, 미국의 외국인 기업과 투자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 등을 현실적 투자 장애 요소로 제기해야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한미 경제동맹에 대한 우려감 증폭 분위기도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투자 협상 내용이 정상회담 당시 경제사절단이 제시한 1500억달러 추가 투자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도 제기할 수 있다.
재정적자의 심화와 가속화는 닥쳐올 태풍이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 정부 지출을 올해보다 8.1% 증액한 728조원으로 확대하여 편성했다. 본 예산 기준으로 53조 8000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내년 공무원 수도 올해보다 2배 많은 약 2000명을 증원할 계획이다.
사실 미국의 강압적인 관세조치의 중대한 발단은 37조 달러에 이르는 누적 재정적자 규모이다. 연간 이자 납부액만 해도 무려 1조 40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국방 예산 8,900억달러보다 1.5배나 많다.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재정투자가 어려워 동맹국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강요하는 형국이다. 프랑스에서도 재정적자 심화의 파급영향이 심각하다. 프랑스의 2024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5.8%로 유럽연합(EU)의 평균 3.1%보다 1.8배 이상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10%를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를 감축하려는 정부의 재정긴축 예산은 야당과 기득권을 누리는 연금 수혜자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의회는 총리 불신임안을 의결했다. 9개월 만에 총리가 물러났고 지난 20개월간 5명의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정치도 경제도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프랑스는 재정부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재정적자의 늪은 되돌리기가 어렵다. 미국과 프랑스의 선례를 답습하지 않도록 태풍이 오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