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대한경제>의 2025. 11. 27. 23면 오피니언 [시론]의 전문(全文)이다.
아쉬운 협상에 '이상한' 후일담
지난 14일 한미 관세 안보 협상의 양해각서(MOU)와 공동 설명자료(Joint Fact Sheet)를 발표한 직후 이례적인 대국민 홍보전이 펼쳐졌다. 대통령실 세 실장(비서, 정책, 안보)이 유튜브를 통해 협상 후일담을 전했다. 미국 측의 청구서를 받아들고 “기절초풍”했고 “사투”를 벌였다고 했다. 올해가 을사년이라 1905년 을사늑약이 상기된다고도 했다. 산업통상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비공식적 보고를 통해 미국 측의 불공정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성토(?)했다. 협상 결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탓인지 이번 협상의 최고위 책임자들이 국민에게 동정심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국가 예산과 국민경제 부담을 초래하도록 협상한 책임을 무겁게 여기기보다는 사투를 벌이며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요청이기도 했다. 국민이 한숨을 내쉬려니 통치자가 자기 팔다리부터 먼저 주물러달라는 셈이다.
10.29 합의사항이 양해각서와 공동 설명자료로 문서화되면서, “굳이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이야기되었다”던 7월 30일 합의사항이 허술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금 중 현금 비중을 5-10% 수준으로 염두에 두었으나 57%로 6-11배 늘어났다. 일본의 무제한 영구적 통화스와프 지위는 언감생심이었고 황당한 수익 분배 구조는 그대로 따라갔다. 즉 현금은 1달러도 투자하지 않는 미국이 원금 회수 기간까지 투자 수익의 50%를 가져가도록 일본이 합의한 방식을 수용했다. 미국이 수익의 절반을 가져가면 우리의 원금 회수 기간은 2배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책실장이 필수조건이라고 공언했던 통화 스와프는 1달러도 합의하지 못했다. 7.30 합의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디지털 망 사용료, 정보의 국경 간 이전 관련 요구(구글 지도)도 추가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손실 발생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은 일본보다 우월한 협상 결과라고 자평했다. 그런데 미일 양해각서에는 명시되지 않은 현금 투자 비중이 이번 합의 문서에서는 명시되었다. 미국의 강압적인 요구와 방식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연간 200억달러(29조원)의 대미 투자금은 2026년 우리나라 국방 예산의 45%이고,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83%에 해당한다. 외화자산 수익금으로 약 15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으므로 외환보유고를 크게 줄이지 않고 외환시장 충격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희망사항은 조삼모사이다. 외화자산 수익금이 투자로 지출되지 않으면 당연히 외환보유고에 포함되고 외화 공급의 감소는 외환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고려시대 서희 장군은 거란 소손녕의 80만 대군의 강압적 침략을 외교 전략으로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압록강 동편 6개주를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거란 침입의 목적을 명확히 파악한 정보력, 윈윈의 거래를 성사시킨 논리력, 협상을 주도하는 전략적 판단력을 복합적으로 발휘한 결과였다. 서희는 거란이 요구한 송나라와의 관계 중단과 국경선 안정화를 수용하는 대가로 거란군 퇴각과 영토 확장의 실익을 챙겼다. 실제로는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지 않았고 단지 교역 축소를 거란이 국교 단절로 여기도록 대송 외교관계를 관리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협상론의 정수이다.
대통령실 세 실장과 장관의 ‘이상한’ 후일담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공정하고 강압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고발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1987년 저서, “거래의 기술”에 보면 답이 다 나와 있고 트럼프는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결국에는 합리적인 합의를 한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는 지피(知彼)는 되는데 지기(知己)가 안되는 것일까?
파이낸셜 타임즈(10. 17)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리더십 발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두 번째로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7명의 주요 유럽 정상들이 동행하여 집단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과 대조적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다. 우리 기대와 요청대로 미국이 맞장구칠 리는 만무할지라도 강압을 역이용하여 국익을 증대시킬 묘책을 강구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는 대통령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 선정, 실행, 운영, 사업 참여업체 선정 등의 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실익을 얻어내는 전략적 추진력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