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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논단 37> 이야깃거리와 재밋거리를 건설하자. 2020-08-06 03:59:10
작성자 : 김태황   조회 268, 추천 17


* 아래 글은 <긴생각 짧은글>이 아니라 '긴생각 긴글'임에 틀림없다. <긴생각 짧은글>의 일탈이지만, 원고 청탁 분량에 맞추다보니 길어졌다.
국토연구원이 반기별로 발간하는 저널 <KRIHS 건설경제> 2020년 상반기 통권 88권(7월 발간) pp.44-50 <칼럼>란에 실은 글이다. 본문 중 몇 개의 문장은 이전에 언론 칼럼에서 기술했던 내용과 중복되기도 함을 밝혀둔다.


이야깃거리와 재밋거리를 건설하자

                                                                                                           김태황 /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1. 불편한 진실

우리 건설산업에 이야깃거리(story telling)가 없다. 콘크리트 시설물과 돈벌이는 있다. 시설물 건설의 기획에서 유지관리와 재생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와 역동적인 사회적 흥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건설산업이 ‘천덕꾸러기’ 기질을 가진 21세기 사양산업이라고 대다수가 단정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건설산업을 재미없는 ‘후진’ 산업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서부터 디지털 전환(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건설 활동이 스며들어 가시화시키지 않은 것이 있는가? 이집트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현공사, 로마 콜로세움, 그리스의 마테오라 수도원 등 고대와 중세 불가사의한 건축물은 물론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드론과 로봇 등의 제작 설비조차 건설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야기는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다. 어떤 관점과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으로 다른 경험을 체득하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눈이기도 하다. 과거에서 미래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생각과 경험은 다차원적이고 독창적으로 열려 있다. 그 깊이와 넓이와 무게는 천차만별이고 변화무쌍하다. 관건은 시대적 환경 여건과 정신적 흐름을 어떻게 투영해 내느냐의 문제이다.

제주도 올레길 21개 정규코스와 5개 부가코스 425킬로미터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올레길’과 ‘제주 올레’로 검색하면 각각 국내 도서 80권과 46권이 올라온다. 수 백만명의 이야기가 생산되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이 올레길을 개척하기 위해, 이 올레길에 국내외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시설물을 발주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사람이 재미있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안길, 오름길, 농로, 숲길, 마을길을 연결하여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을 매달아 놓거나 화살표와 ‘간세’(조랑말 형상 조그마한 철 구조물)로 안내 표시를 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수 십억원, 수 천억원을 들여 새로운 공공 시설물을 건설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또는 원격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일 이야깃거리가 없고 관심거리를 보여주거나 들려줄 것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아무리 최저가 낙찰이라 하더라도 예산 낭비가 아닌가? 하루살이처럼 수익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파산해야 할 부담도 없는데 말이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없거나 누군가가 이야깃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외면당하고 퇴락하기 마련이다. 우리 건설산업이 오래전부터 이러한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태연히 응급실에서 수액 주사기만 꼽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2. 자업자득인가? 불가항력인가?

1) 왜 이럴까?

7월 1일 한 경제신문에 “안 오고 못 배길 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에 올랐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경제활동이 가속화되면서 급속한 침체의 늪에 빠진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한 대형마트는 소비재 판매업체이지만 판매 이전에 소비자의 흥미와 재미를 유발시키며 맛집과 놀거리를 제공하는 복합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어떤 백화점은 아예 1층 명당자리에 슈퍼마켓을 개장하기도 하고 경쟁사 가구업체를 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은 건축가 가우디(Gaudi)가 횡사한 지 올해가 94년째인데도 아직도 그의 생각과 이야기를 이어가며 건축 중이다. 인구 162만명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이야기로 가득하며 지난 100년 동안 수 억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파리 유학 중 가장 어이없게 바라본 것은 센느강(La Seine) 위 37개 다리 가운데 미라보(Mirabeau) 다리였다. 로마에서 태어난 폴란드계(부모가 폴란드인)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가 1921년 발표한 시 <미라보 다리>의 첫 소절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가 어찌하여 한국인 청년들에게도 사랑 노래로 각인이 되었다. 그 덕분에 미라보 다리가 센느강의 다리들 가운데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우리라 여겼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가장 낭만적인 다리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된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이고,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다리는 <알렉산더 3세 다리(Pont Alexandre Ⅲ)>이다. 한 편의 시가 낭만의 다리, 사랑의 강, 찾아가보고 싶은 도시로 이야기를 퍼트렸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가수 혜은이가 젊음과 꿈의 노랫말로 <제3한강교>(한남대교)를 불렀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상영되었지만 한강교의 사랑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설치할 예정으로 2000년 공모 설계에 1등으로 당선된 “천년의 문-한국의 고리”는 우리나라의 새천년 이야기를 담을 지름 200미터에 이르는 세계 최대 원형 건축물 설계안이었으나 좌초되었다. 예산 낭비라는 시민단체의 반대와 안전을 우려하지만 실상은 ‘시기와 질투’의 건축가들 내부의 반대로 재단법인 <천년의 문>의 사업 자체를 무산시켰다. 당선작을 설계한 건축가는 당시 해외 전문 엔지니어에게서 안전의 문제를 공학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답변을 제시하였으나 결국 천년의 이야기는 당선작 발표 후 1년 만에 백지화되었다.

심지어는 1991년에 새로 건축된 청와대 본관조차도 30만장의 ‘푸른 기와’의 이미지와 최고권력의 상징 외에는 건축물의 이야깃거리가 전파되는 것이 거의 없다.

22조원이 넘게 투입된 4대강 정비사업은 시원한 수자원 이야기를 창출하기는 커녕 수질 악화와 생태계 교란의 논란에 더하여 정치적 쟁점을 불러 일으켰다. 5년 간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환경 친화적인 삶의 이야기를 꽃피우겠다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현재 진행형인 주요 국정과제이다. 하지만 3년째가 되도록 솔깃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건설기업조차도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과 사회의 관심을 재미있게 유도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시대적 환경과 정신을 담아 역사를 들려주고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건축물이 있다. 경주 석굴암은 통일신라 시대의 민족정신과 불교 신앙과 문화예술적 안목과 역량이 융화된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무한한 생명의 기원을 볼록한 주기둥과 다층적 기둥머리(栱包)로 펼쳐보이는 듯한 이야기를 무려 천 년이 되도록 전달해 주고 있다. 사대문과 네 개의 산(백악(북악), 인왕, 목멱(남산), 낙산)을 연결한 한양도성은 약 30미터마다 판관을 비롯한 12명의 책임자를 배정하여 민정을 독려하고 축성 공사의 책임을 맡긴 결과이다. 책임자의 관직과 군명(郡名)을 새겨서 공개한 성벽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건설 시설물 또는 구조물이 문화적이거나 예술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다. 본질은 기능적으로든, 미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사회경제적으로든 개인과 사회와 의미있게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건설한 시설물(구조물)이 사람의 오감과 언행에 흥미로운 자극과 신호를 주지 못하도록 건립되었다면 사람과 구조물은 외면과 단절과 쇠락의 관계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 건설산업은 이제까지 이 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왜 이랬을까?

2) 근시안 수요자

우선적인 책임은 건설 시설물의 수요자에게 있다. 공공 시설물의 수요자인 발주기관의 관점과 생각이 근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성을 고려한 책임과 제한된 자율성으로 인해 발주기관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는 없다. 공공 예산을 엄격하게 집행해야 하는 책무는 철칙이기도 하다. 감시자와 비판자의 날카로운 눈은 언제나 예산 씀씀이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고, 공격의 예봉은 불확실한 미래 이야기보다는 확실한 단기적 성과에 집중된다. 공공 발주기관이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사회적 파급효과를 예견하면서 감시자를 압도할 혜안을 제시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발주기관의 타성적 고정관념은 견고하다.

발주기관의 책무 중 하나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으로 시설물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고려해 보면 ‘예산 집행’은 수단이고 본질은 사회적 수요‘이다. 이 사회적 수요는 시설물의 유무만으로 수요의 충족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도로나 철도가 신설된 경우, 새로운 교통망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켰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만일 유지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졸속 공사를 유발시킨 발주 행정의 결과라면 오히려 사회적 수요를 왜곡시켰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발주기관은 효율적인 예산 집행의 성과 못지않게 시설물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적절한 수준에서 적합한 방식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책무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시설물의 품질과 격조의 수준을 탐구하고 적절한 수준을 예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은 발주자에게 있다. 현대 시설물에 이야깃거리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발주자가 이야기 보따리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없고, 이야기꾼을 불러들일 안목도 없고, 이야기 수준을 식별할 역량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저가 공공임대주택(HLM)의 건설에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를 초청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합리주의적 신념을 가졌던 그가 파리 근교에도 단연 돋보이는 독특한 공공임대주택을 설계했다. 세계 도처에서 건축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그가 설계한 공공임대주택을 구경(!)하러 찾는다. 단순한 구경거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이야기, 입주자들의 삶, 건축가의 생각과 시대적 정신, 나아가 프랑스의 사회정책과 건설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기웃거리고 전파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정책과 주택 건축에 대한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공공 시설물의 가치는 일반 상품의 교환가치와는 달리 사용가치를 통해 시현된다. 시설물을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산(비용) 투입 대비 사회적 편익이 달라진다. 발주기관의 관점과 생각이 시설물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3) 외눈박이 공급자

건설 시설물을 공급하는 건설 엔지니어링, 시공업체 및 유지관리업체의 외눈박이 수익 추구 행위도 건설산업을 재미없게 만드는데 일조한 바가 크다. 건설기업의 이익 추구 행위는 당연하고 본질적이지만 건설산업과 시장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농부가 과일나무를 가꾸지 않으면서 과일 따기에만 몰입하려 한다면 행인과 다를 바가 없다. 행인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나면 과일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도 상하고 나무도 볼품없어진다. 아무리 발주산업의 특성을 강조하더라도 우리 건설산업과 시장이 이렇듯 메마르고 무료해진 원인의 다른 한 구심축은 서비스의 공급자인 업체에게 귀속된다.

건설업체들이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이야깃거리를 등한시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50년 동안 건설된 무수한 공동주택이 천편일률적인 구조와 형태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주택 경기의 굴곡이 있고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공동주택의 번성은 우리 건설업체가 대박을 노리며 거역할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실제로 여러 건설기업이 공동주택 건설을 통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건설경기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공동주택의 구조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도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동주택 건설은 입지 선정, 단지 외관의 미화와 실내 구조 변화를 통해 입주자에게 부동산 가격 상승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건설업체는 공동주택 벽면에 브랜드 로고를 남기고 공사 대금만 챙긴다. 주택 건물의 내외부 구조, 주택 단지 공간, 건설 전후 과정, 기업과 입주자와의 지속가능한 네트워크 등 건설업체가 활용할 수 있고, 기여할 수 있고, 확산시킬 수 있는 이야깃거리와 콘텐츠는 등한시해 왔다.

하자보수를 단순한 예로 들어보자. 하자가 없는 완벽한 시공이 최선이다. 하지만 전문 공정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건설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 하자보수를 기피할 것만이 아니라 소비자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건설기업이 하자를 축소하거나 숨기려 하기 보다는 실제 상황을 인정하고 건설 과정을 되짚어 설명하고 노출시킴으로써 오히려 재발을 예방하고 소비자와의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시설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외눈박이가 아니다. 비용도 생각하지만 가치도 생각한다. 눈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귀와 심장도 가진 인간들이다. 건설업체가 한 눈으로만 시장에 참여하고 소비자를 유인하려 한다면 소비자는 심심해서 자리를 뜰 것이다.

4) 벌거벗은 제도

우리나라의 공공 입낙찰제도는 기계적으로 합리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실질적으로 모순적인 측면도 있도록 운영되어왔다. 적격심사, PQ심사, 최저가 낙찰제, 종합심사 낙찰제, 대안 입찰제 등 주요 입낙찰제가 한편으로는 정량적 판단에 의한 투명성과 합리성을 부각시켜 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변별력이 없는 질적 평가에 따라 운영해 왔다.

흔히들 민간 기업은 수익성만을 추구한다는 프레임으로 평가한다. 그러면 공기업과 기관은 어떤가? 최저가 낙찰제 또는 최저가 중심의 낙찰 방식에는 본질적인 오해와 무책임이 배태되어 있다. 최저가가 낙찰 기준이 되려면 동일한 품질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저가는 ‘싸구려’와 동의어가 된다. 1990년대 영국과 미국이 최고가치 낙찰제의 개념을 도입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공공 입낙찰제도가 예산 절감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제도의 본질과 결과가 혼동되도록 운영되어서는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적절한 가치를 창출해 내는 시설물을 건설함으로써 예산이 절감되는 것이다.

제도와 정책은 방향성을 나타내는 절차이고 원칙이다. 실질적인 운영에는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 마치 얼음바닥에도 숨구멍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3. 말랑말랑한 건설

1) 이야기 건설
건설산업은 구조물을 세우는 기계적 조립 산업이 아니다. 프리패브(prefab)와 적층공법의 활성화는 방식의 변화이지 본질의 대체는 아니다. 건설산업은 구조물을 통해 치열한 사회경제적 경쟁과 발전과 변혁의 기회를 제공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삶의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일상을 이어가고 극복해 나아가는 공간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일종의 ‘중매업’과도 같다. 중매쟁이의 장기는 감정과 이성의 셈법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서로 이끌릴만한 이야기를 유도하거나 풀어 놓는 언행이다. 개인과 사회와 세계가 꿈틀거리는 공간에 생동하는 역사와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이제 건설산업은 콘크리트의 강도와 위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경제가 발전의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의 시설물을 제공해야 한다. 저가 의류는 착복의 사용가치를 충족시킨 후에는 쉽게 대체할 수 있지만, ‘싸구려’ 시설물은 대체도 어렵고 폐기도 어렵다. 환경 훼손과 오염의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풍부한 이야기들을 가져올 수 있고 받아낼 수 있고 전파할 수 있다. 주거와 이동과 업무와 놀이 공간의 대부분은 건설산업에 의한 건설산업의 결과물이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의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비록 메마르거나 거친 이야기라 할지라도 입체적 공간에서는 걸러지기도 하고 희석되기도 한다.

건설 구조물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야기 콘텐츠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구조물 이용자(소비자)뿐만 아니라 건설 참여자들의 이야기도 담아내야 한다. 건축물 완공 후 바닥이나 벽면에 감리와 시공 책임자 명단을 기명함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설업체는 시공과정의 촉촉한 이야기들도 이용자들에게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용자들이 시설물의 마케터가 되고 건설업체의 팔로워가 될 수 있어야 한다.

2) 재미 건설

사양산업은 달리 표현하면 재미없는 산업이다. 종사자이든 관찰자이든 재미없다고 여기는 건설산업은 ‘후진’ 산업일 수밖에 없다. 건설산업이 생존하려면 물량 확보와 기술혁신 못지않게 재미있는 산업이 되어야 한다.

건설산업에 젊은 층 인력 부족 현상이 구조적인 난제이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펀슈머(funsumer)’의 소비 트랜드가 대세를 이루며 확산되고 있다. 펀슈머는 펀(fun)과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이왕 지출을 하려면 재미있게 소비하면서 꿩 먹고 알 먹자는 것이다. 재밋거리를 찾아서 소비자의 입맛이 영특하게 진화하는 현상이다. 재미는 주관적이지만 공유하려는 속성이 있다. 독특한 즐거움을 누린 사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인에게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도 재밋거리를 알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는 건물 외벽을 따라 젊은이들이 수 십 미터의 줄을 선다. 고품질의 커피 한 잔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방문 인증샷을 찍어 공유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 주류회사는 신발회사와 협업하여 주류회사 로고와 문양을 새긴 슬리퍼를 판매하고 있다. ‘재밋거리’가 담은 상품과 서비스의 본질과 결합되고 있다. ‘가성비’를 따지던 소비자가 이제는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의 비중)를 앞세우는 추세가 나타난 것이다.

국내 SOC 시설물 대부분은 안전성과 경제성에 집중하다 보니 재밋거리를 창출해 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감소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고속도로 터널에서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자극적인 번쩍번쩍 불빛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여행의 재미는커녕 위협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일상의 재미, 사회경제 발전의 역동적 재미, 글로벌 경쟁 도전과 문화 탐구의 재미,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감지하는 재미를 건설산업이 탐지하고 개발하고 부각시켜야 한다. 재밋거리를 창출해 내는 건설산업에 사람들이 재미있게 공감할 것이다.

4. ‘우리 건설산업이 달라졌어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2005-2015년 동안 방송되었다. 육체적, 정신적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의 일탈적인 언행이 전문가 조언을 받은 가족과 주변인의 관심과 태도의 변화로 아이가 달라진 모습을 감동적으로 전달한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건설산업이 달라지려면 관점, 생각, 절차와 접근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시행착오와 불확실성의 우려를 극복한다면 해 볼만 한 시도이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발주자가 ‘이야깃거리’와 ‘재밋거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말랑말랑한 콘텐츠를 수용할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발주자는 시설물의 소비자로서 시설물의 기능과 성능뿐만 아니라 이 시설물의 고유한 재밋거리와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생산자에게 요구해야 한다. 모든 공공 시설물 발주 예산에는 이러한 돆한 ‘재미’를 창출하기 위한 설계와 시공이 이뤄지도록 예산 항목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잼비’를 높이려면 가치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예산의 본질은 절감이 아니라 적절한 지출이다.

건설기업은 발주자와 최종 소비자의 이야기와 재미의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후속 소비(발주)와 시장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유도해야 한다. 재미의 아이디어와 의지는 발주자에게 있을지라도 이야깃거리와 재밋거리를 구현해내는 기술과 방법은 기업이 발휘해야 한다. 눈길과 마음이 움직여가는 주택, 업무공간, 도로 시설물, 수자원 시설물, 녹지공원 및 도시공간에서는 참여하는 기업과 건설 서비스 브랜드의 가치도 함께 움직여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untact) 경제가 활성화되면 건설 소비와 생산 패턴도 바뀔 것이다. 건설산업은 재미있고 즐거운 삶을 ‘건설’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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