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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열과 대립의 게임 룰을 바꾸어야 할 때 2021-01-11 12:38:12
작성자 : 김태황   조회 204, 추천 16


* 아래 글은 <e대한경제>(구. 건설경제) 2021. 1. 7. 27면에 게재된 [시론] 전문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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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열과 대립의 게임 룰을 바꾸어야 할 때

2001년 영화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실화로 유명하다. 1950년 스물 한 살의 청년이 발표한 개인의 최선 선택(내쉬 균형)의 개념은 그의 지도교수 앨버트 터커에 의해 “죄수의 딜레마”로 알려지게 되었다.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그가 이미 20대말부터 극심한 정신분열증을 겪었지만 인간의 상호의존적인 선택에 대한 특출한 직관과 통찰은 게임이론으로 발전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손실을 입게 될 “죄수의 딜레마”의 일상적인 유혹에 직면한다. 공범 두 사람이 각자 자신에게만 유리한 전략적 선택을 한다면 둘 다 공멸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고속도로 갓길로 주행하면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운전자 모두가 실행하면 오히려 모두가 더 늦게 간다. 공연이나 경기를 더 잘 관람하려고 일어서는 행동을 각자가 실행하면 모두의 시야가 더 가려진다. 사적 이익과 집단 이익이 갈등을 일으킬 때, 물론 구성원이 멸사봉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사적 이익 추구가 나의 손실이 된다면 멸사봉공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각과 행동에서도 그러한 점이 우려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야 정치권을 대변하는 듯한 경쟁적인 신문고가 그렇고, 법무부와 검찰청에 경쟁적으로 배달한 꽃바구니와 화환이 그렇다.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희생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양쪽이 모두 비난을 중단하는 것이 집단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응징의 신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대결의 가속 페달을 늦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경우가 공멸의 치킨게임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은 “정의로움”이다.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5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더불어 잘살아가는 정의로움은 분열과 대립 구도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상대방으로부터 나의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몰락시켜야 한다는 생각과 행동이 팽배해지는 상황이라면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최근 주택시장의 안정화 대책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다주택자와 1주택자와 무주택자를 질시의 대상으로 분열시켰다. 임대인과 임차인을 맞대결 구도로 몰아세웠다. 상대방의 선의에만 의존했다가는 졸지에 탈락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영락없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공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1단계 방법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서로 고자질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협의 통로를 열어 오판의 소지를 예방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적인 협력 이탈이나 배신행위가 나타난다면, 2단계의 대응 방법은 게임을 반복하는 것이다. 일회적인 속임은 가능하더라도 반복적인 배신이나 속임은 어렵다. 만일 반복해서 속는다면 나의 잘못이다. 분열과 공멸의 위기에 대한 3단계 대응책은 게임 룰을 바꾸는 것이다. 나의 무지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배신과 속임수가 가능하다면 구조적인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열과 대립을 선의의 경쟁 구도로 반전시킬 수는 없을까? 게임 룰을 바꾸어야 한다. 강자이든 약자이든 당사자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심판자인 국민이 바꾸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을 조성하거나 편승하는 행위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사회적 손실을 배상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선출직은 소환으로, 임명직은 면직 청원으로 징계해야 한다. 진영 논리를 편향적으로 이용하는 게임 당사자들에게 볼모 잡히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경쟁력을 발휘해 보라고 요구해야 한다.

현재 진행형인 우리 사회의 갈등은 마치 여우와 두루미의 이솝우화처럼 서로 복수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을 차단한 채 상호불신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게임 룰을 바꾸어야 한다. 편가르기가 아니라 신뢰할만한 설득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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