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월간지 <ECOVISION 21>(www.ecovision21.com)에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국제환경이슈>로써 2022년 12월호 pp.18-19 전문(全文)을 옮긴 것이다.
환경친화적 무역과 개발원조
축구 경기의 승패는 얼마나 골을 넣고 막느냐에 달려있다. 최종 공격수와 수비수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공격과 수비의 중추를 담당하는 미드필더(midfielder)의 기량에 따라 득점과 실점의 실질적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차단되기도 한다.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의 상반된 임무를 양발로 수행해야 한다.
국제무역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에는 긴장감이 있다. 무역 확대를 위한 수산물 남획이나 광물 생산 증대가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환경오염을 가중시킬 소지가 크다. 이제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를 나타낸다. 미국은 ‘해양포유류보호법’(1972년 제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내년부터는 적용 범위를 수입 대상국으로 확대한다. 즉 미국으로 수산물이나 수산 가공품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해양 포유류를 혼획하지 않았다고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우를 수출하더라도 고래나 바다거북을 포획할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잡은 새우는 수입 규제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8개 현(縣) 수산물 50개 품목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시행했으며, 일본은 2015년 28개 품목에 대해서는 지나친 수입규제라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우리 정부가 2019년 상소심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건강과 결합된 환경 이슈가 국제 교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례이다.
WTO는 올해 6월 제12차 각료회의에서 21년 만에 수산보조금 협상을 타결했는데, 불법 어업과 수산물 남획에 대한 보조금 금지를 합의했다. 개발도상국은 수산보조금 금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어획량이 감소하고 수산물 수출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왔다. 반면에 선진국은 보조금 남용이 지속될 경우 수산물 남획으로 해양 생태계 악화를 가속화시킬 것을 우려해 왔다. 어업 선박용 면세유, 원양 보조금, 개발도상국 특혜 등의 쟁점은 4년 동안 합의가 유예되었지만, 무역 활성화와 무역장벽 완화를 지향하는 WTO가 해양 생태계 보호의 오랜 숙제를 일부 해결한 셈이다.
164개 WTO 회원국들 가운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50개국은 2020년 11월 ‘무역 및 환경 지속가능성 구조화 논의(TESSD)’를 발족시켰다. 회원국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무역체계에 대한 논의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2021년 12월에는 각료 선언문을 채택하여 환경 보호와 보존이 WTO의 근본적인 목표임을 재확인하고 회원국들의 다양한 여건과 특수한 개발 수요를 반영하는 포용적 접근방식을 강조했다. 2년 만에 참여국 수가 74개로 늘어나서 올 12월에는 고위급 회의를 통해 무역 관련 기후변화 대응 조치, 환경친화적인 상품과 서비스 무역,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위한 무역정책 등을 논의한다.
국가 이기주의로 인해 상충될 수 있는 환경과 무역 이슈는 국제 개발원조에서도 ‘아름다운’ 동행을 시도하고 있다. WTO는 2006년부터 ‘무역을 위한 원조(Aid for Trade)’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사회적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무역 역량과 인프라를 향상시키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2020년 ‘무역을 위한 원조’로 약속한 자금의 51%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대응 목표를 포함하였으며, 기후변화 대응 자금의 약 40%는 최빈 개도국에 배분되었다. 2019-2020년 자원 재생에 투입된 ‘무역을 위한 원조’ 금액은 36% 증가하였다(비재생 자원 부문의 투입액은 26% 증가).
기후변화 대응책이 환경 보호와 보전에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기후변화는 환경 이슈의 심각성을 엄중하고 절실하게 촉발시킨 현상이다. 국제적 환경 이슈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므로 복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 국가의 치밀한 환경 보호 전략이나 다른 국가의 체계적 무역 활성화 전략이 상충되지 않도록 상호 보완적 조정이 긴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적 조정에는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환경 책임이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현재의 환경 악화 수준이 과거의 산업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인데, 개발도상국의 현재와 미래 산업화에 제약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개발도상국을 향한 ‘무역을 위한 원조’에서 친환경적인 산업 기술과 정책, 무역 역량과 금융 지원이 책임성 있게 확충되어야 한다. 국제적 환경 보호와 보전을 위한 현재의 ‘원조’가 알량한 베풂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과 동반지 의식의 발로가 되어야 한다.
축구 경기에서 미드필더가 전방과 후방을 두 발로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듯이, 환경과 무역은 보호와 발전의 양 날개를 병행해야 한다. 코로나 감염병,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러 경제제재 등 반(反)세계화 흐름이 확산되었지만, 국제적 환경과 무역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속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