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대한경제 <오피니언> [시론]란에 2025. 3. 14. (23면) 게재된 칼럼 전문(全文)이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의 충돌
건강검진 결과 의사가 “선생님은 죽습니다“, 감리자가 준공검사에서 ”이 시설물은 무너집니다“라고 했다고 하자. 청자는 화를 내기 전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의사가 30년 후, 감리사가 100년 후라는 말을 살렸더라면 우리는 피식 웃고 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발언과 오락가락 정책이 전 세계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선동과 왜곡이라는 점이다. 3월 5일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4배 높다“라는 그의 발언은 교묘하고 자극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대우원칙에 의해 회원국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평균 관세가 미국은 3.3%이고, 한국은 13.4%이다. 농산물을 제외하면 미국은 2.4%이고 한국은 6.5%이다. 그러나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후 양국 간 교역 품목의 99.8%는 무관세(0%)이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국민에게는 ”4배“의 진위여부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손해라는 ‘가짜뉴스’가 각인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산 상품에 10% 이상 관세를 추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한국이 미국산 상품에 관세를 낮추거나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오염된 인식이 둥지를 틀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개인의 경제 심리를 닻내림효과(anchoring effect)로 설명한다. 처음 입력된 정보가 그 진위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의 경제적 판단과 활동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된 잘못된 정보 흘리기의 속임수가 미국과 한국 국민에게 인식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양국의 통상협상이 진행될 때 은연중에 협상의 좌표로서 작용할 것이다. 정보의 오류라 하더라도 이러한 발언을 함으로써 발언하지 않은 것에 비해 협상의 출발점을 유리하게 주도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의 오류를 모를 리가 없다.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관세정책은 경제적 사안이다. 하지만 그가 ”관세는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면서 관세를 정치적 이익의 창과 칼로 이용한다.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호응을 얻고 국제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할 수도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마약과 불법 이민자 유입을 줄이고, 중국에 대한 해군력 경쟁의 우위를 위해 한국과 조선산업 협력을 유리하게 유도하면서 방위비 증대를 요구할 수 있다. 유럽국가들에게 나토(NATO) 방위비 부담을 증대시키고, 반도체 안보를 빌미로 한국, 대만, 일본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압박할 수 있다. 심지어는 중국의 희료류 수출 제한에 대응하기 위해 덴마크의 주권 아래 자치권을 가진 그린란드의 희토류를 차지하려고도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국제 사회경제적 사안을 공략하는 목적의 정점에는 짝수 연도마다 치러지는 내년 중간선거를 향한 정치적 이익이 있다.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려면 경제적 이익이 실현되어야 한다. 매일 쏟아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의사결정은 국내외 정치적 이해타산에 즉각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하지만 그 내용인 경제적 결과는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추가 관세 부과가 실행되고 있지만, 미국의 수입대체 생산의 확대와 수출 증대, 외국기업의 미국 내 투자 확대, 상품무역 적자의 감소와 재정수입의 증대 등의 긍정적 기대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아마 약탈적인 관세정책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관세 부과로 인한 소비자와 기업의 수입 상품 구매비용의 증대와 국내 동종 상품 가격의 인상으로 물가 상승 유발, 미국 기업의 효율적인 해외투자의 위축으로 글로벌 경쟁력 약화, 교역국들의 대미 수출의 대체 시장 개척 활성화, 제3세계에 대한 중국 경제력의 영향력 강화 등의 부정적인 파급효과도 확대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단기적 정치적 이익 추구가 글로벌 경제에 중장기적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증대시킴으로써 근린궁핍화정책의 부메랑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호혜적인 공통분모를 확장해야 한다.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포함한 농축산물 수입 확대 요구와 방위비 부담 증대 등의 요구에 대비해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 논의를 우리가 선제적으로 요청하여 시간을 벌 필요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