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25일로 정해졌다. 관세 협상이 타결되어 홀가분해야 할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몰아세운 측은 승기를 드높이려 고삐를 빠짝 죄고 있다. 방패 너머로 반전을 노리려는 측은 심사가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세를 몰아 투자 유치, 비관세 조치 완화와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 증대를 밀어붙일 태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적 안면부터 터야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9%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의 투자 방식과 수익 분배의 물줄기를 끌어당겨야 한다. 두 정상 모두 국익 우선의 경제 대통령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게임의 성과가 주목된다. 실무진의 수고는 일단락되었다. 이제 대통령이 숙제해야 할 시간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올스타에 15번 선발되었고 월드 시리즈를 10번 우승한,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출신의 요기 베라 감독이 우연히 남긴 말이다. 그는 1973년 뉴욕 메츠의 감독이었을 때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에서 최하위로 추락한 상황에서 한 기자로부터 “이번 시즌은 끝난 것이 아닐까요?”라는 뾰족한 질문에 이와 같이 즉흥적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실제로 뉴욕 메츠는 그 시즌 막판에 몰아치기 뒤집기에 성공하여 1위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2013년 국내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 명대사가 감초처럼 차용되었다.
이대통령의 숙제는 명료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관세 부과와 투자 요구에 대응하여 호혜적인 통상 규범을 회복하여 우리 국익을 방어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워낙 강경한 입장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는 우리 국민이 정부를 격려할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우리 정부의 자평이나 해명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뒤집기를 하려면 정상회담에 앞서 은연중에 주입된 편향된 바이러스부터 제거해야 한다. 첫째는 미국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어준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는 0%에서 15%로 올렸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수천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해서 미국에 맡기면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를 결정하고 운영하고 투자 수익도 90%를 가져간다는 주술적 선언이다. 해외투자에서 결코 이럴 수도 없고 이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투자 방식, 구도, 운영을 미국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고착시키겠다는 일종의 주입식 프레이밍이다. 또한 의제 선정과 결정은 어차피 트럼프 마음대로라는 자조적 냉소 바이러스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발상과 행보에 우리 스스로 입지를 제한하는 함정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역전극의 실마리는 우리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이재명 방식이 무엇인지를 시범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대통령실 안에서 이빨이 흔들릴 정도로 고민한 내공을 실력으로 발휘해야 한다. 이대통령의 우선적인 숙제는 정상 간 상호 신뢰 쌓기이다. 복합적인 요인들로 꼬깃꼬깃해진 국제정치적 대화의 창을 유연하게 열어야 한다. 설득하든지, 양해를 구하든지, 함께 새 일을 도모하든지, 서로가 대화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긴요하다. 지난 6월 G7 정상회의와 나토(NATO) 정상회의 일정에서 서로 엇갈린 길을 선택한 기회비용을 상쇄시킬 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대통령은 관세협상에서 유보된 논의의 줄다리기를 본격화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오래된 숙제인 비관세 조치의 완화, 알레스카 천연가스 공동개발 투자, 무기 구입과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하는 국방비 예산 등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을 통보받기만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통상법 정신과 기존 통상협정을 초월한 일방적인 관세부과 조치로 미국의 위력과 이익을 챙겼다. 국민에게 각종 전리품을 화려하게 공포하고 전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따리 크기와 총액에서 이익을 챙겼다면 우리는 세부 항목별 실익을 챙겨야 한다. 이대통령이 그 청사진의 퍼즐을 맞추어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에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차선책으로 서두를 필요가 있다. 포스트 트럼피즘의 활로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화두로 던진 “트럼프 라운드”에 낚일 정도로 한가롭지가 않다. CPTPP 가입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유럽연합(EU)과 동반 가입한다면 중국 리스크와 미국 리스크의 완충지로 활용할 가치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