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e대한경제>의 <오피니언>란의 [시론]에 2021. 12. 8. (23면)에 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12061715208400165
'오징어게임', '지옥', '오미크론'의 사회
지난 9월 넷플릭스에서 온라인으로 개봉된 9부작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세계 최초로 17일만에 1억 1천만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한다. 6부작 드라마 <지옥>은 11월 19일 개봉된 지 하루만에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K-드라마가 K-여자골프, K-팝 못지않게 글로벌 감성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2편의 드라마 줄거리는 전혀 감미롭지 않다. 섬뜩하고 잔인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6가지 게임을 거치면서 최종 승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타기 위해서는 455명이 죽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동심의 놀이에서 출발하지만 술래 역할을 하는 로봇 영희는 레이저총으로 패자를 죽인다. <지옥>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죽음의 시간을 통보받은 사람을 죽음의 천사가 어김없이 찾아봐 잔혹하게 살해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의사협회장이 11월 18일 조기에 낌새를 알아차린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O)은 이름을 얻은 지 단 며칠만에 세계를 공포감으로 몰아넣었다. 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다시 국경을 붕쇄했다.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변이 바이러스들이 농작물을 단숨에 먹어치우는 메뚜기떼처럼 78억명의 인간생명에 기어오르고 있는 듯하다.
경제는 살림을 알차게 사는 일이고, 정치는 바르게 이끌어가는 일이다.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모임이다. 우리 경제, 정치, 사회에 죽음을 무릅쓰고 대박을 노리며 돌진하는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이든, 가상자산이든, 공무원 시험이든 ‘영끌’로 덤벼들어야 하는 절박함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무리는 대선게임에서 경쟁자를 죽여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게임룰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민은 언제 불현 듯 상대적 박탈감과 여론몰이 공격의 대상으로 추락할지 불안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 세계 1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큼 나약한 사람 수 세계 1위가 아니라 자살로 내몰리는 환경과 여건이 세계 1위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유입되기 전부터 우리 사회는 이미 분열과 적대적 갈등의 감염증이 퍼져 있었다.
알찬 살림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에도 지속되어야 한다. 개인이 누리는 살림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책임져야 하는 살림도 포함한다. 곳간은 비우기는 쉬워도 채우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퍼다주면서 인심을 얻으려 하고 누군가는 채우느라 야박한 인상을 감당해야 한다면 갈등의 바이러스는 변이를 일으킬 것이다. 41%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59% 국민에게도 대통령의 소임을 다해야 하는데 극단적 분열의 경쟁을 방치해 왔다. 지난 10월말 최단기 무역 1조달러 달성의 위업을 자랑한 이 나라에서 세 번째 교역국인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얘기만 나오면 ‘토착왜구’로 낙인찍는 편협의 바이러스가 완장을 차고 있다.
암울하고 날카로운 시대이지만 새로운 전환의 역사를 일구어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많은 역기능과 부작용을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속한 응전과 혁신의 원동력으로 활용했다. 이제 살벌한 경쟁과 불안한 생존의 게임에서 공포의 바이러스를 물리칠 마늘과 김치의 강인함을 드러내야 한다.
2022년 우리 경제는 미중패권전쟁, 기후변화 대응, 저출생률, 가계부채과 국가부채의 급증, 유가 상승과 국내 물가상승, 잠재 성장률 하락, 구직난과 구인난의 심화 병행 등의 거대한 빙벽에 직면해 있다. 정치 권력 배분 구조는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국내외 현안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치 전문가가 아닌 생업 전문가가 경제, 정치,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현명한 투표권 행사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국민 감시권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 권력과 행정 권력은 국민 생업 주권에 의해 항시라도 견제되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 조직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국민 심부름 센터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민도 법과 제도의 통제때문만이 아니라 정치권보다 선도적으로 부정부패를 단절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근로자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대중소 기업 간 상생협력의 선순환 경제구조를 이끌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3만 1,880달러, 실업률 2.8%, 소비자물가상승률 3.7%, 경상수지 흑자 753억달러, 국가부채율 51.3% 등은 모두 총량과 평균 개념이다. 다른 국가에 비하면 매우 양호해 보이는 경제지표들이지만 어느 자영업자나 기업에게는 삭풍이 몰아치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자체 선거를 계기로 삭풍이 훈풍이 되기를 기대한다.
K-드라마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아가는 일은 고무적이지만 <오징어게임>과 <지옥>의 공포와 불안이 우리 사회의 현실로 굳어져서는 안된다. 정치 권력과 행정 권력이 보이지 않는 오미크론 바이러스보다 훤히 보이는 우리 국민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