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매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e대한경제>의 <오피니언>란의 [시론]에 2022. 1. 7. (23면)에 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1051732478600211
'오직 민생'이라니요
대통령 선거는 매년 치르는 것이 좋겠다. 대선 덕분에 국민 주권과 민생경제 발전을 위한 후보들의 계획과 약속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 밀렸던 법안도 단숨에 통과된다. 여당 후보는 “오직 민생”을 표방했다. 대통령과 국회 의석 60%를 차지한 여당이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대선 후보는 쾌도난마로 척척 답안을 제시한다. 이 답안이 맞는다면 대통령과 여당은 왜 동지의 이런 답안을 진작 실행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원팀의 지혜라고 내놓는 것일까? 제1야당 대선 후보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올해 예산안 608조원을 통과시킨 국회 의사봉 방망이의 메아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추가경정예산안 30조원 규모를 추진하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0월 0.1% 수준이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3.7%로 상승했다. 141개 기본 생활
필수품만 대상으로 하는 생활물가 상승률은 같은 기간에 –0.7%에서 5.2%로 상승 폭이 훨씬 크다. 금리(국고채 3년 기준)는 2021년 2월 1.0%에서 11월 1.95%로 약 2배 인상되었다. KB국민은행 실거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년 전에 비해 38.4%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점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의 민생 위협은 통계 산출조차 어렵다.
대선 후보들이 민생경제를 외치는 것은 당연하고 기대감도 크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민생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민생경제가 방학 숙제처럼 풀 수 있는 사안인가? 민생 현장에서 발표하는 대책들이 민생 현장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대책 발표를 위해 현장을 찾은 것인가?
조선시대 임금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허물이 깊지만, 허름한 복장으로 민생을 직접 살핀 성종, 숙종 등 몇몇 임금의 암행은 혁신적 실행이었다. 궁궐 내에서도 암살의 위험이 도사리는데, 임금이 홀로 궁궐 밖으로 나서는 일은 민생 파악에 대한 절실함과 진정성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임금의 암행과 대통령 후보의 현장 행보는 목적과 방식의 진정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번 대선 후보들이 방점을 찍는 민생경제의 핵심은 부동산 정책과 재난지원금 지급이다. 여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 모두 임기 중 250만호 주택 공급안을 제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유세와 거래세 규제도 조정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의 재난 지원금으로 50조원, 나아가 100조원을 지급하자고 한다. 민생을 물량 공세로 에워싸겠다는 것이다. 솔깃하게 들릴지라도 민생경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사탕발림 소리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민생경제의 회복은 절실하다. 주택가격의 안정화와 자영업 손실 보상이 긴요하게 이뤄져야 한다. 선거공약 대상이 아니다. 대선과 무관한 현재진행형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 대선에서 승자독식을 누리기 위해 국민의 소중한 삶에 경박하게 설탕을 뿌려대서는 안 된다. 지난 3년간 주택가격 폭등은 정책의 실패이지 시장의 실패가 아니었다. 정부의 주택가격 안정화 정책과 전망이 발표되면 시장은 오히려 가격 인상의 신호로 해석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주택가격의 안정화를 장담해도 소용없었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나 정부의 행정 행위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특히 여당 후보의 부동산 대책은 “시장 중심”을 명분으로 한 또 다른 시장 왜곡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뢰도 회복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시장의 흐름을 설득할 만한 정책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정책을 기꺼이 시장의 흐름에 순응시켜야 한다.
민생경제의 핵심 구성요소는 소득과 자산이다. 국민이 소득과 자산을 증대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민생경제 지원의 주요 과제이다. 교육과 훈련, 취업과 일자리, 주거권과 건강권, 출생률과 인구 변동, 빈부격차, 디지털 전환, 지역 사회의 변화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퍼즐처럼 민생을 엮어가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주택과 재난 지원금을 살포한다고 해서 민생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안일한 오판이다. 민생경제의 중심 주체는 개인과 가정과 기업이다. 정부가 조력자에서 주도자가 되려고 한다면 민생은 의존적 사슬로 자박하게 될 것이다. 민생에 자존과 희망과 신뢰의 홀씨가 살아나야 민생경제가 되살아난다.
개인과 가정과 일터의 일상이 간단하지 않기에 민생경제는 복합적이고 긴 호흡으로 움직이는 흐름이다. 하루살이가 아니다. 철새처럼 오가는 민생도 아니다. 개인마다 집집마다 일터마다 굴곡을 넘어 희망의 성취에 도전하는 일상이 민생의 흐름이다. 당장의 목마름도 해소해야 하지만 일상의 영양공급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민생경제의 꿈틀거림을 목도해야 한다. 그들이 득표의 수단으로 민생경제 대책을 오남용하지 않도록 민생을 지켜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의 임기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