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e대한경제> [오피니언] [시론]란에 매월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칼럼으로써 2022. 2. 8(화) 21면에 게재된 전문(全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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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경제와 가상공간 경제
1999년에 개봉된 역사적 걸작 영화 매트릭스는 현실과 가상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2199년 인간은 인공지능(AI)에 의해 뇌세포를 완전히 지배당하여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에 따라 가상현실에 갇혀 살면서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10년 후 또 다른 걸작 영화인 2009년의 아바타는 나의 가상 존재가 나의 현실과 다른 현실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약 10년이 지나 2018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거 감독의 영화 Ready Player One에서는 현실과 가상세계를 모두 지배하려는 악당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두 세계를 혼동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장자의 ‘나비’는 수 천년이 지나도 날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제까지는 가상공간은 현실이 아니었고, 현실도 가상이 아니었다. 설령 두 세계를 넘나들더라도 분리되었었다. 하지만 가상이 현실에 들어오고 현실이 가상공간에 들어가면서 가상현실과 현실가상이 쌍둥이처럼 나타난다면 세계는 달라진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자라고 있다.
디지털 트윈의 개념은 1960년대 미국이 우주를 향한 아폴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착안되었지만, 용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2010년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가상실험과 정보처리 기술의 로드맵을 제시할 때였다고 한다. 영국은 2018년 독립적인 개별 디지털 트윈을 상호연계하여 국가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NDTp)을 출범시켰다. 국가 인프라 회복력을 높이고 국가 자원을 최적 수준에서 활용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다. 빅 브러더(Big Brother)와 같은 거대 단일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디지털 트윈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호주의 웰링턴, 중국의 상하이에서도 도시계획과 관리에 디지털 트윈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0년 한국판 뉴딜 종합 계획에서 10대 대표과제로 디지털 트윈을 선정했다. 인천을 비롯한 지자체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토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에서 실용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현실의 문제를 가상공간으로 들여보내서 해결 방안을 찾아 현실에 다시 적용하는 지속적인 환류체계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트윈의 실용적 완성 단계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산업과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현재진행형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메타버스 등 첨단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이 군단을 이루어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슬금슬금 끼어들고 있다.
흥미로운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선택하고 사용하자는 경제학의 기본원리가 적어도 절반은 허물어질 것이다. 가상현실에서는 자원을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고 무제한의 실험과 탐색을 시도하면서 현실에 최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운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난적인 경제활동과 정책의 불확실성이 감소할 것이다. 현실의 정보와 가상현실의 실험 자료가 상호 유기적으로 넘나들면서 경제활동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한 자동차 부품 생산에서나 맞춤형 의료행위에서나 적정한 주택 공급과 가격 안정화 정책에서나 도심의 바람길을 여는 구조물 설계와 건설에서나 디지털 트윈 체계는 변동성을 완충시킬 수 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현실의 정보가 개별 사물인터넷과 분야별 플랫폼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동기화되고 최적의 조합을 이루어 다시 현실에 적용되는 순환체계가 변동성의 원인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경제적 취약 계층에 대한 포용적 지원 효과도 높일 수 있다. 빈부격차의 완화 대책이 적절한 기대효과를 적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정보의 생산과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은 그야말로 상상과 허구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이 가상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수한 기업과 개인을 초월적인 연결망과 플랫폼으로 불러들여 무한대의 경제활동을 창출한다. 자산 가치를 기하급수적으로 증식시킬 수 있다. 물리적 경제활동과 가치는 한정적이지만 가상공간에서의 경제활동과 가치는 확장적이다. 가상공간이 현실의 보조적인 쉼터의 기능을 넘어 복잡한 현안의 해결 실험장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현실과 경쟁적인 대안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가상현실의 경제가 현실 경제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공상 과학 영화가 현재의 ‘사실’은 아니지만 미래의 ‘현실’은 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는 30여년 전 공상 과학 영화의 출연자처럼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이 일란성 쌍둥이가 되고 있다. 진위를 구분할 필요성도 가치도 없다. 공존과 상생과 상호관계의 실용적 가치가 더 절실하다.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여겼던 상상력의 나래가 경제력의 필수요건이 됐다. 산업의 성패가 상상력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