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오프사이드를 폐지하면 골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컬링 경기의 15분간 휴식시간에도 빙질을 더 관리하면 선수들이 실력을 더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한국은행이 통화를 마구 발행할 수 있다면 ‘영끌’ 없이도 주택 구입이 가능해질까? 아니다. 이러한 바램은 110미터 허들 경기에서 허들만 없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과 같다.
건설산업에는 크고 작은 온갖 허들이 도사리고 있다. 제도적, 행정적 규제에서부터 환경적,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제약조건들이 산재해 있다. 공공공사에서는 입찰 참가 자격도 제한을 받고 공종별 시공 목적물, 시기, 장소 등에 따라 통합발주 또는 분할발주가 결정되기도 한다.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너무 높거나 넓거나 좁은 건축물은 설계 인허가를 받기도 어렵다. 일정한 성능 이상의 방화, 방음 자재로 벽면을 시공해야 된다. 건설 규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건설산업의 제약조건으로서 순기능과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순기능을 확장하고 역기능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현재의 제약조건을 뛰어넘어 허물어야 한다.
산업의 제약조건이 국제적으로 유발될 때에는 파급효과가 가중된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의 전통적인 면직물 제조 방식인 물레를 돌리는 유명한 사진은 20세기 영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17세기 인도 면직물이 발전함에 따라 목화가 재배되기 힘든 환경이었던 유럽에서는 인도 면직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볍고 통풍이 잘되고 흡수력이 뛰어난 장점 덕분이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전통 모직물(양모) 수공예 장인들이 몰락하게 됐고 마침내 1720년에는 영국 의회에서 캘리코(인도 전통 면직물) 수입과 사용 금지 법안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캘리코는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촉매제기 됐다. 18세기 영국의 기술자들이 인도의 캘리코 생산에 대항할 방안을 찾다가 방직기와 방적기를 개발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이번에는 인도의 수공예 장인들이 몰락하게 됐다. 인도와 영국의 핵심 산업이 외부 제약조건에 의해 부침을 겪게 된 것이다.
올해 건설산업의 최대의 제약조건은 안전과 저탄소 환경이 될 것이다. 산업 내부의 규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1월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이후 한 달동안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4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명 감소했지만 여전히 재해 발생의 리스크가 산업을 에워싸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순배출 제로)과 2030년 탄소배출 40% 감축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 생산과 유통 및 소비가 탄소배출 감소 모드의 제약조건을 전격 수용해야 한다. 건설산업이 핵심적인 관찰 대상 산업이다.
건설산업의 내외부 제약조건에 길들여지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상대적 퇴보이다. 제약조건의 순기능은 적극적으로 쟁취해야만 결실을 얻게 되는 반면 역기능은 저항을 해야 겨우 현상유지가 될 정도로 자기강화의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을 포위하고 있는 제약조건의 순기능을 확장하고 역기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면승부가 필요불가결하다.
당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저촉되지 않으려고 공사 기간을 조정하거나 대리인으로 안전관리 책임자를 선임하면서 눈치를 볼 수 있겠지만 제약조건을 바꾸는 해결책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보완적인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산업 안전에 대한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작업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사비 증가를 요구하고 기계화, 모듈화, 인공지능화를 서둘러야 한다. 산업 안전을 영세 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에 맞추어서 읍소할 수는 없다. 업계는 정부에 중소 건설업체도 활용할 수 있는 안전 인프라 비용을 사전적으로 청구해야 한다. 정부의 선도적인 안전 인프라 구축 의무를 청구해야 한다.
저탄소 환경의 기후변화 대응은 되돌릴 수 없는 글로벌 과제이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건설산업의 생존전략은 첫번째도 기술혁신이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기술혁신이다. 저탄소(탈탄소) 생산방식이 건설산업을 억제하는 조건이 아니라 건설산업이 활용하는 조건으로 전환해야 한다. 나무와 숲을 뽑아내는 건축물의 개념이 아니라 나무와 숲을 조성하는 건축물을 세우는 기술혁신을 창달해야 한다.
허들의 높이를 낮춘다고 허들 경기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허들을 극복하는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스포츠 정신의 구현이다. ‘코어’라는 관상용 잉어는 어항 속에서는 불과 5-8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강에 풀어 놓으면 2미터까지도 자란다. 건설산업의 제약조건에 순응하기보다 뛰어넘어 허무는 도전이 절실하다.
